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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와로 Oct 09. 2023

미술관보다 미술관 ㅈㅇ이 더 좋은 이유

LA 게티빌라, 게티센터



 폴 게티는 석유사업으로 떼돈을 번 사업가로 생전에 돈만 아는 구두쇠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미술 애호가로 작품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가 모은 어마어마한 컬렉션이 그가 지은 게티 빌라와 게티센터에 소장되어 있고 무료로 개방된다. 그 규모와 세련됨, 세심한 관리 등 유럽 어느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이 부족할 듯했다. 두 곳 모두 사전에 예약이 필요하고 유일한 비용은 20달러의 주차비인데 둘 중에 한 곳만 내면 된다.


 산타모니카 해변을 지나 퍼시픽 하이웨이를 따라 달리다 보면 오른쪽 언덕에 게티빌라가 있다. 게티빌라는 폴 게티 자신의 집이었다. 지금은 그리스 로마 조각이나 공예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고 대부분의 소장품들을 게티빌라에서 25분 거리의 게티센터에 이관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집을 모델로 건축한 것으로 특히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건물은 개방된 구조로 정제된 아기자기 한 정원과 게티의 아이들이 뛰어놀았다고 하는 뒤뜰의 분수와 정원이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온화한 캘리포니아 날씨가 지중해의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할 만했다. 딸은 이 정원에서 혼자 요가 동작을 하기도 하고 아들은 여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여행 오니까 참 까불거리는 전형적인 10살 남아다. 많은 걱정들이 좀 잠재워지는 듯했다. 나도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니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정원이 주인공이고 나는 초점에서 살짝 빗겨 났다. 꽤 마음에 들었다.


































# 게티센터


 아 이곳은 모든 것이 좋았다.


게티센터는 14년 동안 1조 정도를 들여 게티 사후에 지어졌다. 산타모니카 산 위에 지어졌는데 경관이 정말 멋지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작은 역 같은 트램 타는 곳이 있다. 산 정상에 미술관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무료 트램을 운영한다. 트램을 타고 산을 올라가며 기대감이 고조된다. 아이들은 뭔가 탄다고 하니 또 좋아한다. 트램에서 내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베이지빛의 대리석 건물들이 우아하고 눈이 부셨다. 이 돌들을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공을 들인 만큼 빛이 났다.


트램을 타고 언덕위 게티 센터로 올라간다. 트램비용도 무료,


트램을 타고 내렸을 때.



                                                

푸생 기획전시 포스터 앞에서 흉내 내며 춤추는 아이

                                   




 아직 미술관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LA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이곳에 와서 하루에 그림 하나씩 공들여 보고 햇빛을 즐기고 교육프로그램 참가하고 엄청난 미술서적이 있는 게티도서관에서 책 보고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랑 빵 사 먹고. 해가 질 때쯤 노을 보면서 트램 타고 내려가고. 영어와 공부가 된다면 이곳에서 도슨트를 해보고 싶다.


 

 트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 모든 안내의 집결소인 중앙 건물이 있고 거기서 한국어 팸플릿도 챙겼다. 이 건물을 통과하면 가운데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전시 건물들이 있다. 고대부터 현대미술까지 쭉 볼 수 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W2층 서쪽 2층에 인상파 이후의 작품들이 있다. 게티 미술관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흐의 아이리스를 떠올린다. 눈에 익은 유명한 작품이다. 고흐 그림은 인기도 많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어서 나는 가끔 나만의 보물을 찾고 싶은 마음에 다른 작품들을 더 열심히 살펴봐야지 하는 이상한 청개구리 마음을 가지고 미술관에 간다. 그러나 고흐는 고흐다. 이건 내가 아는 작품이 아니다. 실제로 봐야지만 알 수 있는 느낌이 있다. 고흐가 아를의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렸다고 하는데 아이리스의 꽃잎과 잎들이 두터운 물감의 마띠에르로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것 같다. 얼마나 공들여 열정적으로 붓질을 했는지, 10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조금 전까지 그가 작업한 흔적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무리 지어 있는 보랏빛의 아이리스에서 유독 눈에 띄는 흰색의 아이리스는 동 떨어져 있고 다른 방향을 향해있다. 자신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정신병원에서의 그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아프다. 크기는 4절 스케치북 정도로 크지 않은 작품인데 보면 볼수록 빠져들어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반 고흐, <아이리스> 1889




뒤쪽 정원과 LA 전경




모네, <Weeping Willow and the Water-Lily Pond> 1916-1917


물에 비친 나무의 색감을 보며 아들과 한참 이야기했다. 우리는 작품 앞에 서면, 작품의 제목과 작가에 대한 것을 배제하고 먼저 그림 자체를 읽기 시작한다. 나무가 거꾸로 있는 것을 보며 아이는 물에 비친 나무란 걸 알아차렸다. 연못과 연잎들을 보며 모네의 주제인 것 같은데.. 하며 말을 흐렸다. 그런데 왜? 하고 묻자, 색이 진하고 선명해서 눈이 흐릿하게 보였던 모네의 작품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림의 주제로 작가를 유추하는 아들이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모네의 그림은 이렇다,라는 사전 지식으로 만든 선입견 때문에 새로운 작품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할까 봐 열린 마음으로 아무것도 본 적이 없는 눈으로 작품들을 만나길 기대한다. 이 작품은 하루 중 언제쯤 그려졌길래 나무가 보랏빛일까? 너 보라색 나무 본 적 있어? 계절은 언제쯤일까? 나무에 열매가 달린 것 같아 여름쯤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푸른 보랏빛 하늘은 본 적이 있다고. 해가 지려고 할 때 핑크빛에서 보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큰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그렸지만 그 옆에 흐느적거리는 기다란 잎사귀를 가진, 스패니쉬 모스가 달린 나무가 연못 주변에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와 그림을 자세히 보면서 발견하고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는 과정들이 재밌었다.





에드워드 뭉크, <Starry Night> 1893


별이 빛나는 밤. 고흐와 같은 제목의 작품이다. 흐리고 탁한데 야들 거리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트램 타러 가는 길에 우린 모두 아쉬워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가야 하다니. 하물며 미술관 정원 카페 커피는 리필도 되는데 말이다. 하루 아니 며칠 있어도 볼 게 많고 질릴 것 같지가 않았다. 이후, 게티는 LA 올 때마다 들는 단골 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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