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레는 순간들

삶의 에너지가 되는 감정

by 사과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회사를 나서던 순간 자동문이 열리면서 선선한 공기가 얼굴로 훅 끼쳤다. 무더운 날씨 위로 폭우가 내리고 벌레가 득실거렸던 여름이 지나가고 드디어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가을이라고 해도 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이 높은지 어쩐지 알 수도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해가 쨍쨍하더니 휴일만 되면 비가 내리는 불운마저 겹쳤다. 그러나 비 온 뒤 하늘은 더 푸르른 법. 길고 긴 기다림을 보답받을 때가 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순간에 나는 설렌다.


암막 커튼을 젖히자 푸른 하늘이 펼쳐질 때, 아직은 더울 거라 믿었던 예상을 깨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 연이은 흐린 날씨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선글라스가 아쉬울 정도로 해가 내리쬘 때 순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행복보다 느끼기 어려운 것이 설렘은 아닐까? 설렘은 기쁨과 긴장의 결합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순수한 기쁨과 그로 인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불러온 긴장.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야 생기는 감정이 설렘이다. 연애감정을 바탕으로 한 설렘을 느끼는 것도 어렵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을 보고 설렘을 느끼는 것은 그보다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설레는 순간을 각인하듯 기억한다. 예상치 못한 시원한 바람을 맞았을 때의 기분을, 그때 보았던 하늘의 색과 구름의 정도를 기억에 새겨 넣는다. 이렇게 새겨진 순간 중 가장 강렬하게 설레는 순간은 바로 해지기 직전의 하늘이다. 어둠이 겨우 발을 들일 즈음 섣부르게 가로등이 켜지고 그 뒤로 옅은 노을이 주황빛을 낼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출 정도로 설렘을 느낀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간직하려고 할 때마다 카메라 렌즈가 사람의 눈만큼 뛰어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되도록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문다. 될 수 있으면 하늘이 주황빛에서 붉은빛이 되고 결국 세상의 빛이라곤 가로등 불빛밖에 안 남는 순간까지.


그때의 감정은 에너지로 변환되어 몸속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설렜던 순간이 지나간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삶에서 언제든 설렘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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