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힐빌리의 노래', 가족은 개인의 공동체이다
'힐빌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에 속한 지역의 백인 노동 하층민을 일컫는다. 러스트 벨트란 미국의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표현하는 호칭이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미국 철강 산업의 메카인 피츠버그, 그 외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멤피스 등이 이에 속한다. 대체로 미시간, 인디애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가 이곳에 속한다.(출처: 위키백과) 러스트 벨트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하던 지역이었으나 이번 대선에서 반전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 되자 러스트 벨트 지역 또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도 잘 표현되어있다.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정착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 마주했던 오하이오, 그리고 불황의 흔적만 남은 현재의 오하이오.
원작에서 저자는 이 지역의 하층민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인종, 계급, 직업을 모두 고려해봐도)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알지 못하고 지금 사는 삶이 전부인 줄 알며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책에서 인상적였던 부분은 힐빌리는 면접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깨끗한 셔츠를 입고 가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좋은 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받아 더 저렴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면접과 대학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방편들인데 힐빌리는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지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책으로서 '힐빌리의 노래'는 지침서에 가까웠다. '힐빌리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진출한 힐빌리 출신 청년이 알려주는 세상 사는 법'. 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라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다가도 힐빌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사회고발 서적인가 싶기도 하다. 이처럼 책은 두 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다.
'힐빌리라는 지역' 그리고 '그 지역 출신임에도 성공한 사람'.
반면, 영화로서 '힐빌리의 노래'는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바로 '가족'이다. 책은 지도를 첨부할 정도로 힐빌리라는 지역을 두드러지게 묘사하지만 영화는 초반에 힐빌리의 전성기와 쇠락기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 영화가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서 끈끈한 가족애를 그리며 신파로 끌고 가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가 영화에서 느낀 가족애는 애증에 가까웠다.
어린 JD가 켄터키에 있는 할머니의 고향으로 놀러 갔다가 동네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혼자 힘으로는 저항하기 역부족이지만 가족들이 달려와 그를 구한다. 동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대들 정도로 되바라지지만 어른들 또한 만만치 않아 아이들 틈에서 JD를 구출해 집으로 데려온다. 이것이 바로 JD가 믿고 있는 "가족이 반드시 구해줄" 거라는 규칙이다.
하지만 그곳은 JD가 잠깐 놀러 갔던 곳일 뿐 JD의 진짜 집은 오하이오에 있다. JD는 오하이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누나와 함께 산다. 영화는 분명 JD의 시점으로 흘러가지만 모두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다. 그 모두의 시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고자 한다.
첫 번째, JD의 시점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해서 항상 부모가 자식을 지키고 자식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자식이 부모를 지키고 부모가 보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순수한 상황에서야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JD에게는 그 상황이 다소 강박적이다. "가족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다. JD를 태우고 같이 죽어버리겠다고 말한 뒤 JD가 뒷좌석으로 도망가자 오히려 JD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베벌리는 굉장히 극단적인 불안한 정서를 보여준다. 베벌리를 연행하려는 경찰관은 맞는 말만 한다. '너에게는 익숙할 수 있지만 올바른 일은 아니다.' 베벌리에게 맞았냐고 묻는 질문에 JD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JD를 칭찬한다. '가족은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JD는 성인이 되고 오하이오를 떠나면서 가족보다는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수렁 같았던 생활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하이오에서의 삶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차지만 자신만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돌봐야 한다, 베벌리를 돌봐야 한다. JD에게 베벌리는 짐일 뿐이다. 베벌리가 도와달라고 내미는 손이 그에게는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신을 붙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갈퀴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JD는 베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올 수밖에 없는 가족이니까. 이제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린 가족이니까.
두 번째, 할머니의 시점
할머니가 무리한 방식으로라도 가족을 지키려는 이유는 그녀가 고향을 떠나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것이고 그녀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진정한 유산이다. 그러나 그녀의 유산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번성하는 새로운 도시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할 줄 알았으나 그녀의 삶은 러스트 벨트와 같다.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며 그 힘든 세월을 보냈는데도 아직 그녀의 쇠락기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채로 딸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다니. 경찰이 출동한 두 번의 사건을 겪으며 생각했을 것이다. 베벌리가 망가진 것이 나 때문은 아닐까?
할머니는 JD의 탈선에 책임을 느끼는 린지에게 JD는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벌리를 대신해 손주들을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과거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잘 해내는 JD를 보면서 베벌리를 떠올릴 것이고 JD가 베벌리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라 자신이 JD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입증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JD는 할머니가 음식 배달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본 이후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할머니는 일찍 성숙해지고 남들보다 더한 노력을 해야 하는 JD의 모습을 보며 기특함, 미안함, 안쓰러움,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세 번째, 베벌리의 시점
베벌리는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탓에 처음부터 모범적인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으니까 자식도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베벌리는 도가 지나쳤다. 동반자살로 협박하고 위증을 하는 것이 엄마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약에 손을 대면서 극단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보인다. 베벌리도 처음에는 잘 키워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애를 키워야 한다는 중압감을 베벌리는 이겨내지 못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한 베벌리는 JD에게 여자친구의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JD는 대답하지 않고 병실을 떠난다. 그때 베벌리의 표정은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는, 자신이 자식에게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를 확인한 사람의 표정이다. 베벌리는 할머니가 JD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 순간 엄마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그 후 베벌리는 다시는 엄마가 되지 못했다.
재활시설에 가기를 거부한 베벌리는 동거남이 사는 집으로 가지만 그곳에서도 머물 형편이 안 되자 모텔로 향한다. 모텔에서 베벌리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을까? 거처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모텔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라니, 공허함과 자괴감을 혼자서는 견딜 수 없어서 약물에 의지한 것이다. 베벌리에게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네 번째, 린지의 시점
린지의 장면은 케빈과 함께한다. 켄터키를 떠나 오하이오에 도착하자마자 케빈을 만나고 온종일 케빈과 통화한다. 린지에게 케빈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이다. 린지가 케빈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결혼까지 한 것을 보면 린지의 노력과 의지를 감히 짐작해본다. 한 남자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남자를 전전하는 베벌리를 보며 린지는 불안정함을 느꼈을 것이다. 불안한 정서가 남자관계에도 반영되는 것이라고.
동시에 린지는 JD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케빈과 시간을 보내느라 JD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다행히도 할머니가 린지의 자책과 책임을 덜어준다. 만약 할머니가 JD를 돌보지 않았다면 그 몫을 고스란히 감당했을 사람은 단연코 린지일 것이다.
JD와 달리 린지는 힐빌리에 남아 결혼을 하고 세 자녀의 엄마가 되었다. 린지에게도 베벌리는 발목을 붙잡는 과거이자 현재이고 이 상황이 답답하기는 JD와 다르지 않다. 욱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소리를 질러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한다. 베벌리와 다른,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한 린지의 노력이다.
린지는 엄마를 용서한다.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린지도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서러움과 억울함을 끌어안고 살기에는 삶이 너무 버거워서 용서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JD의 가족이야기일 수도, 베벌리의 가족이야기일 수도, 할머니의 가족이야기일수도, 린지의 가족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나의 가족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가족에 속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은 개인에게 하나의 폭력이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반면, 버팀목이 되어주고 기준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우리가 가족이란 운명에 행사할 수 있는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주어진 운명을 따라야 하는데 가족이 내 인생을 좋은 길로 이끌지 나쁜 길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인생의 시작점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 당신은 어떤 가족을 만났는가? 나는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