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성인용 산타클로스

로맨스의 끝은 무엇일까?

by 사과실

만물이 피어오르는 봄에 시작했던 이번 글은 겨울이 되어 끝났다. 내가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더 빨리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개월의 시간 동안 예상치 못한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하고 단순히 게으른 마음에 미루다 보니 첫눈을 맞고서야 마지막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로맨스 영화를 보며 영화를 통해 로맨스를 배우겠다는 포부로 시작했는데 그 시간 동안 로맨스 영화가 내내 끌렸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더 많은 영화에 대해 쓰고 싶었으나 권태기가 오듯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내 취향에도 권태기가 왔다. 그래서 매거진을 위해 의무적으로 보기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추려 진심으로 보고 싶은 때만 봤다. 비록 기간은 더 길어졌지만 글에는 더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끝을 기념해 어떤 주제를 다룰까 고민하다 '끝'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과연 로맨스의 끝은 무엇일까?


'끝'으로 가기 전에 먼저 '시작'부터 해보자. 로맨스의 시작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혹자는 사람 간의 감정이 통하는 순간이 로맨스의 시작이라고 하는 반면, 감정의 교류 없이도 누군가에 대한 설렘과 소망이 생기는 순간을 로맨스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로맨스의 시작만큼 로맨스의 끝이 무엇인지 또한 세기의 질문이다. 로맨스의 끝을 이별이라 봐야 할지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봐야 할지도 애매하다. 다양한 결말 중 고르고 골라 로맨스의 끝을 세 종류로 추려보았다.


이별, 그리고 로맨스에 대한 불신

로맨스에 상처 받았거나 로맨스의 실패를 반복한 사람은 더 이상 로맨스를 믿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시작이 '로맨스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한다. 지난 사랑의 실패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누군가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주인공.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람과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전개를 보면 불신은 로맨스가 두려워서 나타난 대응방법인가 보다.


드디어 알게 된 서로의 마음

첫 번째 경우만큼이나 많은 수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연애감정의 싹이 트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 시청자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있는 것을 알지만 정작 영화 속 두 사람은 상대의 감정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이 커질수록 불안함도 따라와서 상대의 감정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절정의 순간으로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확인하면서 연인이 된다. 연인으로의 시작은 혼자만의 로맨스가 끝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일일연속극을 보면 마지막 회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고는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극이 끝난다. 흔히들 '결혼은 로맨스의 끝'이라고 하지만 그 의미는 '로맨틱한 관계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니 씁쓸할 뿐이다. 그래서 결혼의 다른 면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바로 '안정'.

결혼을 하면 안정적인 상태로 들어설 수 있다. 사랑의 방랑자에서 벗어나 한 사람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을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다.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혼도 로맨스의 좋은 끝이 될 수 있다.




나에게 로맨스는 영화다. 그래서 로맨스의 끝은 현실이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세계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가듯 로맨스가 끝나면 현실만 남는다. 다채롭던 세계에서 무채색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영화 '케이트&레오폴드'에서 케이트는 '로맨스는 성인용 산타클로스 이야기(Grown-up version of Santa Clause)'라고 말한다. 본 매거진 '영화로 사랑하기'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로맨스는 다른 의미에서도 성인용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맞다.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를 기다리지만 다 커버린 지금은 로맨스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빨간 방울, 초록 방울, 노란 불빛의 시기도 지나면서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며 남긴 회색빛 눈, 짙은 하늘, 싸늘한 바람을 담은 겨울만 남는다. 크리스마스라는 로맨스가 지나고 겨울이라는 현실이 온 것이다. 같은 겨울인데 그토록 다른 느낌일 수 있는지 매년 의아하다.


이제 나는 무채색의 계절을 앞두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때만 찾아오지만 로맨스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는 꼬박 일 년이 다채로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