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과 함께 늙을 수 있을까?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부터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까지

by 사과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OST였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께서 노래를 자주 틀어놓으셨고 나중에야 그 노래가 영화에 삽입된 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어쩌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인가 위로를 받고 싶을 때나 마음이 공허할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보고 난 후 ‘열심히 살아보자’는 의지가 불타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는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도 유난히 힘들었던 날에는 퇴근길에 Gabrielle의 <Out of reach>를 듣는다. 시작부터 둥둥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가 위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브리짓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흘러나온 곡이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오늘도 큰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으려 노력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감정으로 기다렸다. 2편이 너무도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3편을 영화관에서 봐도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1편을 푹 빠져서 봐서 2편에도 그만큼의 기대를 걸었지만 기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브리짓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유쾌함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짓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는, 바로 그 평범함이 매력인데 2편은 전혀 평범하지도 않고 급하게 빚어낸 느낌이었다. 결국 ‘브리짓은 언제쯤 철이 들까?’라는 비난만 남았다.


몸무게를 재며 솔직한 모습으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을 때조차 브리짓은 적지 않은 나이였다. 30대의 브리짓은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지 못했다. 일에서 전문적이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남자 문제는 복잡하다. 성숙한 모습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을 만들고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긴장감을 늦추는 역할을 했다. 그랬기에 브리짓에게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2편을 봤을 때는 브리짓의 서툰 모습이 답답했고 주변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브리짓은 더 이상 나와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편은 여러 번 봤지만 2편은 딱 한 번으로 끝났다.

10년이 지난 후, 브리짓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movie_image2.jpg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브리짓과 샤저


브리짓은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친근한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예전처럼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버릇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만큼 무모하지는 않다. 쓸데없이 말을 길게 늘어뜨려 계속 이어가기 위해 말을 덧붙이기보다는 때에 알맞게 끊을 줄 알게 됐다. 브리짓은 10년 전보다 많이 성숙해졌고 능숙해졌다. 역시 시간은 흐르기만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새로울 것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다 익숙할 수는 없고 모든 것에 능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브리짓은 여전히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음과 위로를 줬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관람객에게 "너는 마크와 잭 중 어떤 남자가 더 끌리니?"라고 물어본다.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마크와 잭. 무뚝뚝하고 서툴지만 그만큼 그 남자의 한마디는 무게감이 있다. 진중한 성격의 마크를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아님, 1,2편의 다니엘에게 질려 능숙한 남자는 역시 다 바람둥이라고 단정 지었을 때, 짠! 하고 나타나서 능숙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로맨스의 끝을 선사하는 잭이 더 좋을까? 브리짓의 취향은 뒤로 하고 영화가 흐르는 동안 관람객은 마음속에 저마다 자신만의 한 남자를 품고 응원할 것이다. 나는 절대적으로 마크를 지지하며 마크의 눈빛 하나, 입꼬리 하나를 마음으로 느끼며 영화를 봤다. '브리짓은 정말 남자 복이 터졌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눈빛에는 부러움을 가득 담았다. 아무리 마크를 응원한다 해도 잭이 처음 브리짓의 집에 와서 보여준 '연애 파노라마'는 극단적으로 로맨틱했다. 이 영화의 명장면이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물론 로맨스 영화지만 로맨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는 않다.


브리짓과 그녀의 친구들, 직장 동료는 대부분 40대 전후다. 40대는 가장 활발히 사회생활을 할 나이지만 빠르게 사회에 적응할 나이는 아니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브리짓은 젊은 감각을 주장하며 프로그램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려는 직장 상사에게 맞추느라 고군분투한다. 한편,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지지하는 엄마의 사고방식과도 대립한다. 브리짓은 위아래 세대와 맞서기 바쁘다.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젊은 상사에게는 '진정성'을 얘기하고, 아빠를 모르는 임신을 한 자신을 숨기는 엄마에게는 '변화'를 얘기한다.

'진정성'과 '변화'


movie_image.jpg 붉은색 종이 다이어리에 적던 브리짓은 옛날이야기다. 이제는 태블릿 PC에 적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변화할 때가 온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이것저것 덧칠을 하고 수식을 갖다 대도 본질 자체는 그대로다. 누군가 말을 할 때 입보다는 눈을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덕분에 변화를 마냥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모두는 진정성이라는 마스터키로 열 수 있는 집에 살고 있으니까.


로맨스에 가장 필요한 것 또한 진정성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와 영화가 말하듯이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면, 결혼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해석하고 점칠 수 있는 세상에서 무엇이 결혼의 시작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브리짓의 친구는 누군가와의 미래가 고민이라면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라고 한다.


저 사람과 함께 늙을 수 있을까?


비혼주의라는 말이 생기고 주변에도 비혼주의자들이 꽤 있다. 나는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결혼에 필사적인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있다. 내 옆에 항상 누가 있다는 것, 같이 늙어갈 사람이 있다는 것, 무슨 일이든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결혼이 로맨스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형태의 로맨스라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늦은 나이일지라도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 언제쯤 나는 저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