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영화는 다양한 키스신으로 시작된다. 시대, 공간, 심지어 종(種)까지 다양하다. 어린아이, 새, 물고기의 키스까지 등장할 정도다. 로맨스라는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을 통해 영화의 정체성이 오로지 로맨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소피는 팩트체커(Fact-checker)로 일하고 있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소피의 현실이 나와 비슷해서 영화가 더 와 닿았다.
소피가 뉴욕을 떠나면서 이탈리아가 펼쳐진다. 정확히 말하면 소피가 빅터의 가게를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탈리아스러움이 묻어난다. 파스타면을 올리브유에 버무려 먹는 것부터가 내게는 굉장히 이탈리아스럽게 다가왔다. 소피가 이탈리아에 도착해 거니는 거리를 통해 이탈리아의 풍경과 건물을 엿보았다. 소피가 찰리와 도시를 돌아다닐 때는 노천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장을 지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이 이제는 전부 낯설어서 더욱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으로 가면 줄리엣 동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친구도 거기를 다녀와서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며 찍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가슴 부분만 색이 바랜 것이 눈에 띄었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던데, 색이 바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소원을 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편지를 써서 벽에 붙여놓는다. 그러면 '줄리엣의 비서들'이 그 편지를 수거해서 줄리엣을 대신해 답장을 보낸다. 너무나도 낭만적인 답장이 아닌가!
2년 전 봄,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온기 우편함을 발견했다. 아무 종이에다 편지와 우리 집 주소를 적어 넣으면 답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하소연할 곳이 필요해서 푸념 섞인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집으로 '온기님 앞'이라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하늘파랑새'님은 나의 푸념에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주었다. 각기 다른 3장의 편지지로 이루어진 답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른다. 작년에는 부산에 놀러 갔다가 느린 우체통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느린 우체통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1년 후에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이색 체험이다. 달라진 상황 속에서 그때를 마주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소피가 이탈리아로 떠난 이유는 약혼자인 빅터와 프리 허니문을 갔기 때문이다. 둘은 신혼여행을 온 것이지만 결국 따로 다니게 된다. 긴 여행 중 일행과 따로 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건 그냥 여행이 아니고 신혼여행이 아닌가. 도시가 아무리 낭만적이라 한들 둘 사이에서는 로맨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둘은 말을 하지만 그것이 대화인지는 모르겠다. 서로 각자의 얘기를 하는데 과연 서로 꿈꾸는 미래가 일치하는 걸까? 소피가 결혼반지를 끼지 않은 것도 어쩌면 둘의 관계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반대로, 찰리는 소피와 대화가 된다. 소피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용기를 준다. 약간의 도발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둘은 더 가까워진다.
찰리는 자신의 할머니이자 오래된 편지의 주인공인 클레어가 찾는 로렌조가 만약 죽었거나 병에 걸렸으면 어쩌냐는 걱정을 한다. 그리고 로렌조를 소울메이트라 부른 소피에게 소울메이트는 클레어의 남편이자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말한다. 찰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결혼을 로맨스의 결실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결혼하는 순간 로맨스는 끝이라는 뜻도 된다. 우리는 로맨스의 해피엔딩을 보고 싶어 하지만 로맨스의 진정한 해피엔딩이 뭔지는 알지 못한다. 첫사랑과 결혼하면 추억할 사랑이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로맨스는 때론 추억으로 남아야 할 때도 있고 평생 내 옆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소피의 직업인 팩트 체커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현실에 입각해서 정보를 확인하는 일을 한다. 한편, 소피가 되고 싶은 작가란 일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현실보다는 낭만을 추구한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현실과 로맨스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피의 상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로맨스가 가짜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진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보니 로맨스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아이러니한 걸 찾아야 한다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고 어렵기 때문에 더욱 찾고 싶고 꿈꾸는 것이 로맨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