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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 Aug 12. 2021

다시 쓰려고 합니다

구독자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열여섯 명의 구독자님, 혹은 누구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편하게 읽어주세요.

오늘 제가 사는 곳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도 없이 외출을 했다가 굵은 빗줄기를 맞이해야 했어요. 조그마한 가방을 머리에 쓰고 와다다 달리는데 웃음이 나더군요. 인생이란 무방비 상태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통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 야속한 아이러니에 그냥 와하하 웃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요 며칠의 저는 되는 일이 없었거든요.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들은 죄다 불량이라 시간을 흘려보내며 스스로를 버려두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이대로 쓰는 일도, 사는 일도 멈춰버릴까 겁이 나던 중이었어요. 그래도 다시 살아보고자 외출을 감행한 것인데, 그대로 비를 맞아버리고 만 것이죠. 어쩐지 허탈하더라구요.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약간의 체념으로 젖어버린 가방을 털어내고, 비를 피해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훑어보다가 작가의 말을 조금 읽어보았어요. 거기서 작가님은 지난 2년 중 절반의 시간 동안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건드리면 터지는 물주머니 같은 상태로 무엇도 쓰지를 못하다가, 벌판에 눈이 쌓인 어느 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다시 ‘쓰는 사람의 세계’로 초대받았다고 말이죠. 적막과 고요 속에서 하얀 벌판을 바라보며 오래 막혀있던 입을 떼고 문장을 써내려가는 사람의 모양을 상상하며, 저는 어쩔 수 없게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떤 불신, 실망, 두려움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심정을 뚫고서 글을 쓰는 일이 그토록 숭고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고작 글을 쓰는 일인데 말이죠.

비가 그친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다시 글을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을 쓰자. 근데 무슨 글을? 어떻게 쓰지?' 다짐 뒤로 늘어지는 고민을 뒤쫓아 밟으며 밤길을 걷는데, 문득 많은 것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임대를 내놓은 상점 위로 집을 짓고 있는 거미, 나란히 산책을 나온 두 강아지의 순한 눈동자, 물이 콸콸 쏟아지는 횟집의 수족관, 좁은 평상에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그 모든 것들이, 당황스러울 만큼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거짓말 같겠지만 정말로 그랬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게 있다면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거요. 아무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조그마한 것들이요. ‘그래 그렇다면 이 조그마한 하루하루를 기록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단순한 기록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는 연결되고 싶었어요. 말을 건네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혼잣말이 아닌 글을 말이죠.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수신자는 지금 제 글을 읽는 당신이 되겠죠. 그리고 앞으로도 이름 모를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계속해보고자 합니다. 더 간단히 설명하면, 이제부터 이 채널에선 조금 자유로운 내용으로 ‘편지 형식의 에세이’가 연재될 듯합니다. 그동안 써온 글과 모습이 달라질 거예요. "이딴 글 바란 적 없어!"라고 하신다면 구독을 취소하셔도 거뜬히 이해합니다. 브런치는 자유롭게 쓰는 공간이니 냅다 쓰기 시작해도 무방하겠지만 (그리고 구독자가 많은 인기채널도 아니지만) 왜 다른 모양의 글을 쓰기로 했는지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몇 안 되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안부도 묻고 싶었고요. 실은 그냥 제 성격이 이래요. 스스로 납득시키지 못하면 시작을 못하거든요.

모쪼록 저는 다시 ‘쓰는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언제 다시 이 세계에서 추방될지 모르지만요, 되는 데까지 다시 써보겠습니다. 고로 이 글은 스스로를 향한 약속과 다짐, 그리고 약간의 격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혼자 하는 다짐에 답장을 보내주시는 사람이 있다면야 더 기쁜 일은 없겠죠. 그러니 끝에는 언제나 당신의 안부를 묻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하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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