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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15. 2021

누가 치킨을 이길 수 있을까

해마다 봄이 짧아진다. 긴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는데, 잠깐 날이 따뜻한가 싶더니 어느새 덥다는 말이 입에 붙는다.

봄꽃 보러 가야지 한 게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그 꽃들은 다 바람에 날아갔다. 봄에 입으려고 긴 팔 블라우스와 바지도 샀는데,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여름옷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생겼다.

매년 봄옷은 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칙칙하고 두꺼운 겨울옷에 질려, 꽃처럼 환한 새 옷을 사게 된다. 좋아하는 노랑과 주황색의 봄맞이 옷들.

      

계절이 바뀌면 늘 하는 일이 옷장 정리다. 날씨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니 지난해 상자에 넣어둔 옷을 꺼내 지나가고 있는 계절의 옷과 자리를 바꾼다. 그렇게 계절은 옷장 속에서 서로의 역할을 맞바꾼다. 몇몇 옷들은 상자로 들어가지 못하고 재활용 의류함으로 사라질 신세지만, 무사히 살아남은 옷들은 다음 해를 기약한다.

 



며칠 전 여름옷을 꺼내 정리했다. 거울에 하나씩 대보는데 왠지 한 눈에도 옷들이 작아 보였다. 옷이 줄었나, 아니, 옷이 아니라 내 몸이 불었잖아!

여름이 올 때마다 옷장 정리와 함께 시작하는 일이 있다. 바로 다이어트다. 겨우내 불어난 뱃살은 바지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똘똘 뭉쳐있다. 이럴 줄 알고 밴드가 달린 편한 바지를 샀는데도, 숨이 턱 막힌다. 늘어진 팔뚝살은 또 어떤가. 올여름엔 민소매 나시는 꿈도 못 꾸겠다.



누구를 탓할까. 지난겨울, 코로나를 핑계로 거의 나가지도 않고, 재택근무하는 남편, 학교 안 가는 아이들과 먹고 노는 일에만 전념한 결과다. 종일 집에 있는 남편은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입 짧은 아이들은 밥 해주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골치 아픈 일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오늘은 뭐 먹지?’라는 말이 유행가처럼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음식 배달앱 vip와 새벽 배송 단골은 그렇게 얻은 불명예(?)였다. 사들인 음식과 식재료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고기와 튀김(특히 치킨)을 좋아하는 식성이라 불어나는 몸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여름옷과 내 몸을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나온다. 먹을 때는 그렇게나 신나고 행복했는데, 그 결과가 눈앞에 여실히 드러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아, 오늘부터 무조건 다이어트다! 먹는 양을 반으로 줄이고 운동을 시작하자. 배달음식 금지, 바지에 배가 쏙 들어갈 때까지, 여름이 오기 전에!     




여기까지가 여름이 오기 전, 내가 늘 반복하는 일이다. 여름옷과 겨울 살들의 대결, 격한 후회, 굳은 다짐까지.

어제저녁, 가볍고 건강한 채소 가득 저녁밥을 먹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걸 보면서 나도 좀 움직여야 할 텐데 싶어 주변을 열심히 걸었다. 어느샌가 저녁밥은 다 소화돼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 간판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아이들에게 간식 먹고 싶지 않냐고 꼬신 후 자연스럽게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냄새가 풍겨온다. 아, 카운터 옆, 그곳에 맛있게 튀겨진 치킨이 놓여 있었다. 정말이지, 치킨을 사러 온건 아니었는데, 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아하는 치킨을 마음껏 먹었던 겨울의 날들이 나를 유혹한다. 나는 의지가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치킨을 좋아했다. 일주일이면 다섯 번은 치킨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 남편과 데이트하던 시절, 잘 튀겨진 바삭한 치킨에 생맥주 한잔이면 더 바랄 게 없었다. 하긴, 그때는 뭘 먹어도 날씬했는데, 나이 드는 게 서러울 때가 요즘이다. 이게 다 호르몬 탓이야, 핑계를 대봐도 소용없다. 많이 먹고 안 움직이니 당연한 결과다. 스무 살 때야 어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했었나. 산에 가면 지나가는 아저씨가 날다람쥐 같네 하고는 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산에 가면 나무늘보쯤 되려나.

  

아이들이 고른 아이스크림 사이에 슬며시 치킨 한 조각이 끼어든다.

“엄마, 다이어트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가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으며 묻는다. 그저 닭다리 하나일 뿐이니, 운동도 열심히 했으니 괜찮을 거야. 이런, 자기합리화까지 슬쩍 등장한다.


“응, 내일부터.”


집에 돌아와 한입 베어 문 닭다리의 맛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내일 비가 온 후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고 한다. 봄옷 입을 시간이 늘어났다. 여름옷은 아직 이르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여름이 다 가도록 내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힐 나쁜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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