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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Dec 28. 2021

엄마와 딸, 그 어려운 마음

<밝은 밤>은 내 얘기가 아니기를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아 어젯밤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책을 펼쳤다.



최은영의 <밝은 밤>


주인공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 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로 지방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엄마와 인연이 끊긴 외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할머니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상처를 극복한다.

고조할머니와 할머니, 엄마와 주인공까지 4대에 이르는 백 년에 걸친 이야기 속에는

한국 전쟁과 가난, 핍박당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백 년 전과 비교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전쟁 같은 극도의 공포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

배우자의 외도는 시대에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며, 가난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전쟁의 공포와는 다르지만 코로나라는 지독한 전염병으로 통제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여자들의 삶의 상황 역시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혼 사실을 숨기는 부모에게 상처 받는다.

남편의 외도에도 이혼은 마치 여자의 잘못인 것처럼 여기는 현실도 여전하다.

주인공의 엄마는 자신도 시댁의 온갖 횡포에 고통스러웠으면서 딸은 참고 살기를 바란다.

이혼한 딸을 부끄럽게 여긴다.





나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소통하기 힘든 엄마와 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엄마의 단절은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 그 자신은 엄마와 힘든 관계를 이끌어 간다.

미워하는 마음과 상처 주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에 고통스러워한다.

반면에 할머니와는 한 걸음 떨어진 관계에서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






나 역시 엄마와의 관계가 편하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힘들고 어렵다.


엄마는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고,

나를 감싸고 지켜주기보다는 나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사람이다.

여자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자식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 무게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웠다.


여자인 나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도와야 했고,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내 손으로 도시락을 싸가던 십 대 시절이 떠오른다.

어린 내가 만들고 싸는 도시락은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여는 게 부끄러웠다.

맛있는 반찬이 없어서,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씩, 그때 엄마가 정말 내 도시락도 못 싸줄 정도로 힘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려서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가 해 온 수많은 일들이(도시락은 그저 작은 부분일 뿐),

내가 직접 아이들을 낳고 키워보니 부메랑처럼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진 않았을 텐데,

아무리 힘들어도 나라면 어린 딸에게 그러지 않았을 텐데.


원망은 깊었고, 이해하고 용서했다고 말하면서도, 말 뿐일 때가 많았다.

자기기만이었다.






책을 읽고, 나와 엄마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내 딸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지나온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올 미래를 걱정했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나의 딸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오늘 아침,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말다툼을 했다.

입고 갈 옷이 마음에 안 들어 화가 난 아이가

예전 일들을 꺼내며 차갑게 내뱉는 말들이 나를 할켰다.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막막할 때가 많다.


나는 과연 내가 엄마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딸들에게 온전히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은 소설에서처럼

내가 아닌 나의 엄마를 더 이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떤 상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직 세상일을 단정할 나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더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움과 원망도 사라질지 모르겠다.


가끔은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

마음에 아무런 원망도 남지 않게 될 날을 말이다.


슬프게도, 내가 본 어떤 사람도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용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슬픔을 가슴에 담아 둔 채

익숙한 상처로 함께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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