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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히 Sep 24. 2023

3. 락스타라는 말에 홀려서 만든 ‘아스팔트 선셋’

효자야 효자. 네가 최고다!




선베드서비스를 만들고 한참 우울해져있었다. 사실 금방 털고 일어났다! 내가 지금 연습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러고 있냐. 스케일도 외워야지 다이아토닉도 꿰고 있어야지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침울해있겠나. 나는 다시 내 자리에서 또 이런저런 코드들을 잡아보기도 하고 멜로디를 녹음하기도 하면서 작은 소스들을 차근차근 모았다. 그리고 기타연습도 놀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러던 차에 예전에 훈련소에서 만난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되게 목소리도 크고 엄청 특이한 사람이라서 머릿속에 항상 남아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전에도 한번 만나서 술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형이 요즘 내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연락을 해본 것 같다. 난 요즘도 음악공부하고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있다고 했다. 그 형이 또 음악을 기가 막히게 좋아해가지고 만든 거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 또 이런 부탁 받으면 내심 좋아가지고 넙죽 넙죽 줘버리게 된다. 하하!


선베드서비스는 좀 아픈 손가락이니까 그나마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정전을 보내줬다. 그 형이 정전을 들어보고는 바로 ‘쉬파알 개미쳤냐고~~~ 마더퍼킹 락스타잖슴! 개미친 새끼 락스타의 길을 가버리는 거냐고~~ 쥐엔장~~’ 이러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자기가 음악을 진짜 좋아하고 정말 많이 듣는데, 이건 정말 개좋다고 계속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때 살짝 풀이 죽어있던 내게 그런 단비 같은 칭찬이 쏟아지니 다시 어깨가 빵빵한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형은 잔뜩 신이 나서 다른 것도 보여달라고 했다. 기분이 풀로 좋아져버린 나는 거의 초전도체급 무저항으로 선베드서비스를 보내줬다. 그걸 듣고는 가사 좋잖슴~ 이라고 하고는 별말이 없었다. 하아. 진짜 존나 아픈 손가락이야 진짜로. 여튼 그 형이 나한테 계속 락스타 락스타 이러니까 진짜 기분이 엄청 묘하고 좋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어떤 거였나. 그건 바로 퍼킹 락스타의 꽝꽝꽝 시끄러운 락이 아닌가! 그 형의 칭찬세례에 바로 홀려서 엄청 시끄럽고 엄청 꽝꽝대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기타잡고 그동안 쌓아놓은 소스들을 하나씩 조합해가면서 꽝꽝꽝 쳐봤다.


꽝꽝꽝 치는 것과 살짝 스트로크를 할뿐인 차이인데도 그 둘의 차이가 엄청 컸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코드를 찾았다. 그런데 이 코드가 약간 뭐랄까. 좋긴 한데, 엄청 감성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감성적인데 꽝꽝꽝? 그냥 미친 조합이잖아. 그래서 좋다고 바로 녹음 갈겨버렸다. 그런데 결과물이 마음에 딱히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꽝꽝거리는 음악 중에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키노쿠 테이코쿠의 음악을 들으면서 진행에 힌트가 될 만한 게 없을까 계속 돌려들었다. 그러다가 엄청 인상적인 진행의 곡을 들었다. 사실 모든 앨범을 다 돌리긴 했는데 워낙 노래가 많아서 까먹고 있었나보다.


조용히 읖조리듯 시작해서 갑자기 꽝꽝꽝거리는 기타리프가 쫘악 나오는 그런 노래였는데, 나도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아스팔트 선셋도 다른 노래가 그렇듯 가사를 예전에 미리 써놨는데 개인적으로 단어들이 굉장히 예뻐서 눈여겨보고 있던 아이였다. 그런데 멜로디가 생각보다 쉽게 붙지를 않았다. 핸드폰 녹음 개수가 자릿수가 바뀔 때까지 계속 다른 걸 녹음했는데도 성에 차는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벌써 밥 알람이 울렸다. (작업할 때 밥 시간을 까먹어서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먹은 적도 있다. 작업할 때는 알람이 필수다.)


그냥 버거킹 가서 햄버거 하나 씹으면서 녹음했던 걸 차근차근 돌려듣는데, 그 중 하나가 진짜 거짓말 안하고 극락 수준의 멜로디가 하나 껴있었다. 부를 때는 별로라고 생각해서 넘어갔는데 그냥 밥먹으면서 다른 장소에서 들으니 진짜 멜로디랑 가사랑 너무 잘 맞는 것이다. 바로 집으로 달려와서 냉큼 녹음 갈기고 다시 들어봤다.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이게 내가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가사와 멜로디가 딱 붙어서 그냥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꽝꽝거리는 파트를 만들 때는 진짜 좀 많이 신났었다. 방구석이지만 진짜 뭔가 페스티벌에서 꽝꽝 기타를 치는 것처럼 고양감이 있었다.


그리고 만들다보니 구성에서 가사가 좀 모자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즉석에서 바로 써야했는데, 난 가사를 미리 다 써놓고 작업을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쓰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예전에 그 가사를 쓸 적에 못다한 말을 밑에 줄 글로 길게 써놨던 게 있었다. 그 글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말이 잃어버리는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려봤다. 그랬는데 갑자기 멜로디랑 가사가 쭈욱 나오더니 그 가사의 마지막에는 왠지 가슴이 무너질 것처럼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적 없었지. 하지만 어딘가 두고 온 것 같아. 그때 내게 쏟아지는. 와르르’


자신이 무언갈 두고 왔다는 걸 알았을 때, 무언가 쏟아지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가슴이 찢어지고, 심장이 부서지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이 다음엔 그냥 와르르 와르르 와르르 계속 반복하고 싶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기타 소리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나도 같이 입으로 내야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들고나니, 순간 흠칫했다. 너무 나간 것 같아서 조금 멈칫했다. 갑자기 이렇게 급발진을 해도 되는 건가. 느린 멜로디에서 갑자기 의성어를 대폭발시키는 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하지만 난 이게 좋은 것 같았고, 꼭 필요해보였다. 심장이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한다면 이게 가장 알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갔다. 뭐. 이상하면 아픈 손가락 늘어가는 거고…


이 노래를 만들 때엔 단 하나의 이미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떤 한 남자의 얼굴인데, 노을을 보는 듯 붉으면서 노란 햇살이 그의 얼굴에 쏟아지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을 봐버린 사람처럼 울듯 웃는듯 행복한듯 고통스러운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무엇을 봤을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의 삶에 영원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에 있을까 현재에 있을까. 회상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순간을 사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그저 알 수 업는 표정을 짓지만, 그 어떤 순간보다 영원에 가까울 시간을 보내는 남자가 그냥 눈에 보였다.


이건 노래를 만들 때 든 생각인지 가사를 쓸 때 든 생각인지 불분명하다. 여튼 이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며 멜로디를 짜고 구성을 짰다. 난 이 곡의 코드 진행이 중간에 한 번은 장조의 느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행복해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이저의 느낌을 지닌 밝은 코드로 다시 진행했을 때 멜로디도 뭔가 더 밝은 느낌이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2절에서는 좀 더 밝은 느낌의 렛잇비? 같은 코드 진행이 완성됐다. 엄청 친근하고 익숙한 진행이었던 것 같은데, 전반부와 대조되는 느낌이 그걸 낯설고 신선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렇게 멜로디도 연주도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럽게 마지막 꽝꽝 파트는 단조의 느낌을 지닌 전반부의 코드로 다시 돌아갔다. 처음 만드는 꽝꽝 파트라서 평소에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봤다. 이상한 소리도 넣어보고, 엄청 노이즈 낀 목소리로 소리도 질러보고, 다른 음악들에서도 꽝꽝 파트는 으레 왠만한 것들이 다 총출동해서 다 부숴버리는 느낌이라 나도 다 총출동시켜서 부숴버리는 그런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기타는 계속 꽝꽝거리고 솔로는 그에 맞춰 높은 음을 조졌다. 코러스는 필터랑 딜레이를 빡세게 걸어서 노이즈가 엄청 강하게 만들었다. 드럼도 이번만큼은 감당가능한 음량 최대치로 올려서 걸어놨다. 그렇게 마지막 파트까지 완성하고 마무리를 했다.


다 만들고 나서 듣는데, 생각보다 좋긴 한데 뭔가 살짝 부족한 것 같았다. 근데 그 살짝 부족한 감각이 점점 커지더니 곡 자체가 부실하고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새벽에 한참을 끙끙 앓다가 이 곡의 구조를 간단화해서 A B A B로 나누어보니까 아귀에 안 맞고 혼자 따로 노는 8마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새끼 잡았다 요놈! 개인적으로 공들여 만든 솔로가 있는 파트였는데 주저함 없이 바로 삭제하고 새로 분위기에 맞게 다시 녹음했다. 그리고 다시 들으니까 진짜 개좋았다.


이 노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제일 좋은 곡이었다. 정전 때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의 온도가 달랐다. 다들 와르르 이 부분이 인상적이라서 기억에 엄청 잘 남는다고 말했다. 처음 이걸 만들었을 땐 사람들이 이걸 이해할까, 설득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이 파트가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잘 남는 부분이 됐다는 게 신기하다. 내 머릿속에 그린 그 남자의 얼굴 그림이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 그림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와르르 파트나 다른 파트들도 많이 달라지거나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이 노래가 타이틀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난 아무리 해도 이것보다 더 좋은 노래는 만들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멜로디도 코드도 가사도 모든 게 완벽하게 다 들어맞는 그런 노래였다. 연주는 솔직히 꽝꽝꽝 원툴이라서 조금 부끄럽긴 하다. 음계가 충돌하는 것도 몇 개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들을 전부 꽝꽝으로 얼버무려가지고… 그 부분은 좀 부끄럽다. 하하.


단지 락스타라는 칭찬이 좋아서 꽝꽝거리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했던 게,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결과로 돌아온 것이 참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만약 그 형이 전화 안 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순간 아찔해지기도 한다. 제일 아픈 손가락 뒤에 만든 노래가 효자 중 제일 효자라니.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도 결과도 좋으니까 기분이 매우 좋았다.(사실 내 기준 모든 게 새로운 시도다. 해본 게 없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노래가 쫙쫙 나온다면 좋겠지만 기대가 언제나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 앨범을 만드는 그날까지!



https://on.soundcloud.com/qpmsimMxiyqq1Qdp6 


우리 효자 한번 들어보세요.

아스팔트​ 선셋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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