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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호 Nov 22. 2019

독서의 이유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시대에 독서를 하는 사람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꺼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니 모두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있거나 포털사이트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간혹 나와 같이 손에 책을 든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반갑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괜히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저 사람은 무슨 책을 읽을까? 어떤 표정으로 책을 보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자꾸만 힐끗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특히 우리나라 같이 통신망이 발달하여 언제 어디서건 영상물을 시청하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독서를 할까?


 20대 중반의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방문했다. 그냥저냥 사람들 사이를 방황하던 중에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을 만났다. 어렸을 때에는 책을 꽤나 읽었던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 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이 책은 하루하루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쳐가던 홍대리가 독서를 통해 하루하루 발전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직장인이었던 이 책의 주인공 홍대리에게는 그리 큰 공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직장인의 삶을 모르니 공감할 수 없을 수밖에…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에게는 공감하지 못했지만 독서의 필요성만큼은 절실히 통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왜 책을 읽을까 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아마도 호기심이 아닐까? 한 권의 책은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평생은 아니어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연구한 결과를 묶어낸 것이다. 나 대신 누군가가 들인 시간과 비용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소정의 돈을 지불하고 그의 연구결과를 통해 나의 호기심을 해결한다. 호기심을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의 성취감은 사람들이 꾸준히 독서를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경제나 경영, 정치 등을 비롯해서 인문학이나 역사, 과학, 철학 등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개발이다. 사회는 점점 지식 중심의 사회가 되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에 발맞춰 다양한 정보를 배우고 익히는데 나만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자기 개발은 바로 독서이다. 독서를 통해 나도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책을 집어 든다. 주로 자기 개발서 혹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서 등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독서를 통해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책을 읽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다고 답한다. 사실이다. 독서는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데도 해야만 하는 것은 “일” 로 족하다. 나는 주로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은 감정의 테마파크다"라고 했다. 소설은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이입시켜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고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상상하게 해 준다. 이런 감정이입은 때로는 대리만족을 선사해 주기도 하고 밉살스러운 어떤 이를 이해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나에게 그 어떤 말보다 분명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다독가이자 애독가로 알려진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한 방송에서 “독서가 주는 재미는 진입장벽이 높은 재미”라고 했다. 너무 공감 가는 말이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눈알만 굴리며 가만히 앉아 반복적으로 책장만 넘기며 독서를 하는 행위는 분명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다. 하지만 독서를 하는 중에 나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한다. 부단히 상상하고, 끊임없이 해석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엮어낸다. 책 한 권을 읽어낼 때마다 머릿속에 하나의 세계가 세워지는 기분이다. 이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어떤 쾌감에도 뒤지지 않는다. 마라톤을 마친 선수가 느낄 것 같은 성취감과 뿌듯함이다. 이 정도의 쾌감을 얻기란 확실히 어렵고 힘들지만 결국에는 나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준다. 물론 재미없는 책도 부지기수다. 열심히 읽었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 책들, 공감할 수 없는 책들,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책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럴 땐 그냥 던져버려도 된다.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나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내가 재미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은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다행히 우리 곁에는 나의 독서 스펙트럼을 넓혀줄 책도, 독서 스펙트럼이 넓어진 이후에 읽을만한 책도 넘쳐난다.  


책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


 이렇게 힘들게 읽었는데 돌아서면 책 내용을 금방 잊어버린다. 책을 읽을 당시에 아무리 재미있고 신선한 내용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떻게 하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책에서 읽은 내용을 모두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많이 혹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메모를 한다던지 책 내용을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기억한다던지 하는 방법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아하”이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설득력 있게 반박하는 내용들을 보게 된다면 의도적으로라도 "아하"를 한다. 특히, "아하"를 외친 이후에 메모까지 같이 한다면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 (당연하겠지만 실제로 소리 내어 외칠 필요는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아하"를 외친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는 과정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 부분을 새롭게 받아들였는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 다른 사실들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아야 그것이 나중에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진짜' 나의 지식이 된다. 책을 읽는 중간에 “아하”를 하는 행위 자체가 북마크를 해 두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연결하거나 비교하는 과정이 그것을 더욱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것 같다.  




 위에서 소개한 이유 외에도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을 것이다. 이유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미디어와 영상이 판치는 이 시대에도 사람들 여전히 독서를 한다는 것, 사람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 성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9.1 권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많은데?”였고,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독자들이 무엇을 얻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였다. 책을 통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9권이 아니라 90권, 900권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단 한 권을 읽어도 독자들이 각자에게 소중하고 값진 어떤 것을 하나라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작은 경험들이 점점 쌓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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