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마이크 브라운
요즘 아이들은 태양계 행성에 대해 어떻게 배울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선생님께서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의 순서로 태양계가 구성되어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모두가 알다시피 수성 (Mercury), 금성 (Venus), 지구 (Earth), 화성 (Mars), 목성 (Jupiter), 토성 (Saturn), 천왕성 (Uranus), 해왕성 (Neptune), 명왕성 (Pluto)의 앞글자만 딴 것이다. 미국에서는 “My Very Excellent Mother Just Serves Us Nine Pizza”라고 외운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8월, 미국의 한 천문학자로 인해 우리는 “수금지화목토천해”까지 한숨에 외우다가 마지막 한 글자를 가까스로 참아야만 하고, 행성의 순서를 외울 때마다 뭔가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별 한가운데에 하트 모양을 품고 있는 작고 사랑스러운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 찝찝함을 선사해준, 명왕성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바로 그 인간이 쓴 책이다.
저자인 마이크 브라운은 태양계 내의 새로운 천체를 찾는 일을 하는 천문학자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양계 내에는 새로운 행성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그는 다르다. 새로운 천체를 찾기 위해 밤하늘을 이 잡듯 뒤지는 사람이, 찾으라는 새로운 행성은 찾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행성을 퇴출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는 어쩌다가 명왕성을 죽인 사람이 되었을까?
명왕성은 지구에서 약 30~50AU (1AU = 지구에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에 있는 천체인데, 그 크기는 지구의 1/6 밖에 되지 않는다. 표면이 메테인이라는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망원경으로 보면 밝게 보여서 처음에는 크기가 상당히 큰 별로 생각되었지만 관측장비가 발달하면서 실제 크기는 지구의 1/6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명왕성은 미국의 천문학자인 클라이드 톰보라는 사람이 최초로 발견되어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 인정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크 브라운이 명왕성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천체인 에리스와 제나를 발견하면서 명왕성의 행성 자격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다. 에리스와 제나를 시작으로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궤도를 도는 천체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국제 천문학회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국제 천문학회의 회원이 아니었던 저자는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었고,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역 기자들과 함께 tv로 시청하고 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여러 가지 논제들에 대해 길고 지루한 토론과 논쟁을 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그저 멍하니 회의를 참관했다. 그러다 마침내 회의 주제가 “행성의 조건” 이 되자, 그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했다. 70여 년을 지켜온 명왕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보수적인 학자들과 그에 맞서는 학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따옴표를 추가해야 하느냐 마느냐부터 시작해서 명왕성을 왜소 행성으로 불러야 하는지 마는지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왜소 행성으로 부르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왜소한 나무도 나무이듯 왜소한 행성도 행성인데, 그들을 굳이 왜소 행성으로 부르기에는 얼마나 작아야 왜소 행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무의미한 논제가 필수적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등등 각종 시시콜콜한 주제로도 논쟁이 벌어졌다. 이 어리석고 지난한 과정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어떻게 지식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어쨌든, 결국 국제 천문학회에서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하자, 저자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명왕성은 죽었습니다 (Pluto is dead).”라고 말했고 이 문장은 각종 신문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사건 이후, 저자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새롭게 정해진 행성을 어떻게 외워야 할지 청취자들에게 물었다. 수많은 청취자들의 답변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다.
“아주 많이 사악한 사람이 그냥 세상을 축소했다 (Mean Very Evil Men Just Shorten Up Nature).”
필자는 과학자이지만 매우 매력적인 문체를 가졌다.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치와 유머가 책 곳곳에 녹아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책 전체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책인 것 마냥 술술 읽혔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책인 것 같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의 느낌은 마치 귀욤 뮈소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한 권의 소설책인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이 책은 제목에서와 같이 그가 어떻게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 무리에서 퇴출시켰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각각의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전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하게도 국제 천문학회가 있었던 바로 그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쉬백 형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은 이제부터 저자가 들려주게 될 “어떻게”라는 부분에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작가는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 딸을 낳고, 그 딸아이를 키우는 과정 전체를 이야기해 주는데, 처음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나는 이것 또한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힐 수 있도록 작가가 사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가는 딸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사용하고 거기에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연구를 진행했고,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덧붙여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 전체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순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저자는 이 부분에서 마저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이전에 코스모스 리뷰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우주라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코스모스라는 인간의 관측범위를 벗어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인간들의 제한적인 관측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임의적인 약속들로 점철되는 태양계 내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한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이 현재까지의 과학기술과 문명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지식을 발전시켜왔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행동과 논란거리가 나타났다가 해결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으로 이 광막한 우주의 모든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이 필요할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지식을 한 걸음이라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과학자들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