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침을 분석해 맞춤 항체를 만드는 인체의 신비
어쩌다 시작한 완모였지만, 아이를 먹이며 저는 인체의 신비함에 매일 새로웠습니다.
엄마의 가슴은 단순히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는 '최첨단 바이오 연구소' 수준이었죠.
모유에는 영양분뿐만 아니라 여러 살아있는 세포들이 들어있습니다. 항체 같은 면역 성분과 함께 백혈구 등 면역세포도 함께 아기에게 전달되는 것이죠. 심지어 줄기세포도 모유에 존재하며 아기에게 넘어가 장기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 모유는 다양한 계통으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줄기세포의 공급원입니다.
(Hassiotou F, et al. "Breastmilk is a novel source of stem cells with multi-lineage differentiation potential." Stem Cells 30:2164-2174. 2012)
그런데 이 성분들의 비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기와 엄마의 건강 상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합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침-유방 피드백 고리(Saliva-Breast Feedback Loop)'라는 메커니즘입니다.
해당 메커니즘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아기가 젖을 빨 때, 입안에 진공 상태가 만들어지면서 아기의 침이 아주 미세하게 엄마의 유두 안쪽(유관)으로 역류해 들어갑니다. 이걸 '역류(Retrograde flow)'라고 하는데요. 이때 엄마의 몸은 아기의 침 속에 섞여 있는 병원균(바이러스, 세균)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면역 체계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그 병원체에 대항할 수 있는 '맞춤형 항체(주로 분비형 IgA)'를 생성해 다음 수유 때 모유에 섞어 내보냅니다.
*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의 Foteini Hassiotou 박사 팀의 연구(2013)에 따르면, 아기가 감염 상태일 때 모유 속의 백혈구(면역세포) 수치가 평소보다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엄마의 몸이 아기의 아픔을 감지하고, 모유를 '치료제'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Hassiotou F, et al. "Maternal and infant infections stimulate a rapid leukocyte response in breastmilk". Clinical & Translational Immunology. 2013)
실제로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 상태가 처지는 걸 느꼈을 때, 끊었던 새벽 수유를 이어가거나 평소보다 젖을 자주 물리면 컨디션이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도 젖을 물고 잠들면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맑은 눈으로 깨어났죠.
그것은 기분 탓이 아니라, 엄마의 몸이 밤새 만들어 보낸 항체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아이를 직접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고단함을 잊게 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였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대신 "엄마가 낫게 해줄게"라며 젖을 물릴 수 있다는 것.
그 작은 행위가 주는 안도감이 11개월 완모를 지속하게 한 큰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