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_ 저는 고객센터에 다닙니다.
- 반갑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벌써 몇년째인가.
전공이었던 유아교육과 아동학을 때려치우고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였던 것이 벌써 15년이 넘었다.
나인투 식스의 완벽한 구현과 급여일에 급여가 밀리지 않고, 내가 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곳.
이직을 한건 아무 이유도 없었다.
단지 위에 있는 3가지의 조건이면 충분했고, 그 충분한 조건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으므로,
나는 뒤집기도 하지 않은 백일짜리 둘째까지 엄마에게 맡겨두고 바닥에서 뛰어오르려는 벼룩의 심정으로
고객센터라는 업종에 내 30대를 기꺼이 던지기로 결정했다.
2000년대 초.
붉은 악마들이 전국을 물들이던 그 때, 운영하던 음악학원을 그만두고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을 먹다가 우연히 고객센터라는 곳의 업무를 알게 되었다. 왠지 내가 하면 잘 할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나는, 2배수를 선발하고 업무테스트로 인원을 걸러냈던 G사의 고객센터의 채용에서 말하기에 자신있던 내 장기를 살려 두번의 인터뷰 과정을 뚫고 입사했다. 잘하는 건 말하는거, 말아먹는 사유도 말하는 것..이 특장기인 나에게 잘 맞는 그림이었다. 게다가, 일하는 내내 말하는 일이라니. 이건 새로운 재능발견인가.
그리고 그 첫 입사지에서 녹록치 않은 하루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신입교육은 길었고, 강사는 무서웠고, 처음 접하는 전산은 어려웠다. 한달만에 배정받은 팀의 팀장(슈퍼바이저)들은 흡사 저승사자같았고, 누군가 나에게 메신저를 띄우면 그건 내가 잘못했다는 이야기였다. 메신저가 뜨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더라? 라고 떠올려보는게 신입의 일과중 가장 주요한 일과였다.
결제와 주문, 상담이력을 구현한 그 시스템을 가지고, 환불이든 배송이든 저장이 잘못되거나 카드결제가 잘못되었을때 소명하지 못하면 그것또한 직원들의 잘못이 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처럼 전산시스템이 잘되어 있지도 않은 초기 고객센터의 전산은 지금 떠올려보면 아찔한 지경이나, 그래도 그 프로그램으로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고객센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기에 타 업종 대비 급여는 나쁘지 않아 지원자들은 많았고, 채용인터뷰도 길었다. 신입이 오면 업무 및 실무 적응 트레이닝을 4-6주동안 받고 입사하던 시기였다. 실무 (필드라고 표현한다)에 가면, 통화품질은 물론 업무시험 점수도 잘 받아야 했고, 처리해야 하는 건수도 높아야 했다. 센터의 관리자들은 시간마다 건수를 전체 쪽지로 뿌려대는 그 곳에서 낙오하는 자들은 지독한 잔소리를 각오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지만 그래도 모두 실적 상위를 향해 세렝게티의 치타들처럼 맹렬하게 내달렸다.
나의 실적은 언제나 탑클래스에 랭크되었다. 통화품질도 몹시 좋았고, 시험도 늘 센터 최상위권이었고, 센터 우수 직원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되었다. 파트리더 역할을 맡아 신입들이 입사하면 멘토링을 수행하기도 했는데, 몇개월 안된 나의 빠른 성공(?)은 주변의 시샘을 사기에도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선임들은 나에게 심한 경계태세를 갖추었지만, 그런쪽으로는 눈치 없고 싶은 나는 카드키 대고 밥사먹는게 마냥 좋은 철없는 신입일 뿐이었다.
그렇게 상담사라는 터널을 몇개월 겪는 동안 , 스스로 빠르게 지쳐갔다. 급여는 칼처럼 십원하나 안틀리고 나왔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경쟁을 버텨내기에 나는 덜 떨어진 상위권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틀에 박힌 나 자신을 내가 틀에 박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제일 싫었던 것중 하나는 시간맞춰 타야 하는 지하철이었다. 컴컴한 굴속을 지나가는 지하철 안에 갇혀 있으면 왠지 마음까지 어두워지는 암흑이 찾아오곤 했다.( 폐소공포증도, 공황도 아니었는데 여튼 지하철이 싫었고 지금도 싫고 앞으로도 싫을것 같다.)
게다가 결정적인 이유는, 뭔가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 못하면 원래 몹시 잘났어야 하는 내 인생이 너무 나락같을 듯 싶어 나의 길을 찾으며 열심히 살겠다는 어설픈 자존감과 미래 지향적인 사유로 퇴사를 했다.
그래서 탈출에 성공했을까?
.. 미래지향적인 퇴사에서 1-2년이 지난후 보험사의 QA센터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관리자의 순례길을 시작한 나는, 발만 담그기는 커녕 아예 두 발을 묻어버린 지경에 가깝도록.. 여태까지 고객센터 업무를 수행중이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9시.
오늘도 업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