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와의 단절과 고립은 내 스스로가 선택한 나의 몫이였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태어나서 지금껏 보아온 아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를 케어 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되었다.
남편은 다행히 회사가 있었지만, 나는 직업조차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키울 형편이 되질 않았다.
내가 빨리 자리를 잡아야 아이를 데려올 수 있고, 우선적으로 먹고 살 생각을 해야 했다.
눈을 마주하고 잠에서 깨어나고 하는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나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잠을 자고 혼자 일어나고 일을 가야 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하루 종일 누구 와도 한마디 나누지 않은 단절을 경험했다.
그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자식을 못 본다는 것과 20년동안 일하고 노력하고 참았던 결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든 것이 허무하기만 했다. 다만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생존이었다.
남편이라는 허울뿐인 울타리도 없었다. 수입이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든든할 수 있는 방패막이 남편이라면 이제는 아무도 없는 것이니까.
이혼하면 그런 가족이란 울타리가 모두 사라진다.
또 자연스럽게 친정의 식구 와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보통은 더 살갑게 친근하게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막내라고 처량히 보는 것도 부담이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거기에 그 동안 쌓아왔던 사회적 관계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 사회적 관계라는 것은 둘이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관계라서, 내가 모든 걸 주고 회사를 나왔기 때문에, 나는 이혼하 면서 그와 관계된 모든 연락처를 다 삭제했다.
시댁 식구들의 모든 전화를 지운 것도 그 즈음이다. 어찌보면, 이혼하면서 아이와 살 수 없고, 그 동안의 인간관계 반이 날라갔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것이지만, 그래서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야 결혼 생활이 완벽하게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견뎌내야 하는 내 몫이었다. 내가 선택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