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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인트 Mar 10. 2020

로운이의 돌잔치 이야기

    년 전, 로운이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 로운이에게는 날짜라는 개념도, 생일이라는 개념도 없다. 그래도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 존엄한 생명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고, 울고, 뒹굴고, 뒤집는 등 낯선 세계에서 분투해온 것을 감사하며 앞날을 축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인 친지들은 로운이의 지난 1년을 ‘함께’ 지나왔고, 이 역시 기념할만한 가치와 자격이 있었다. 간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친지들 외의 지인은 초대하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 이제 막 한 살, 잔치는 시작되었다. 이 잔치는 특별히 전문가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몇 가지 의례적인 말들이 지나가고 불이 꺼지더니 앞쪽에 펼쳐진 스크린에 영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스마트폰으로 틈틈이 찍어놓은 로운이의 1년이 흘러갔다. 발전한 세상의 돌잔치다운 모습이다.

   이어서 로운이가 그동안 한 번도 입을 기회가 없던 전통 옷을 입고, 역시 전통적으로 디자인된 무대에 올라왔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아직은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막상 로운이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니 드디어 공적 세계에 데뷔하는 느낌이었다. 소박한 케이크에 촛불 하나가 꽂히고 불이 켜지고, 우리는 진심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옷과 무대는 우리 전통을 채택하면서, 케이크와 노래는 서양 문화를 따른 조화로운 구성이었다. 촛불을 로운이가 껐는지 엄마가 껐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자의 제안에 호응해 모두가 축배로 마음을 모았다.


   어른들은 슬슬 배가 고파질 시간이고, 아이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는 시간이지만, 첫 돌을 맞이한 날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특별한 순서가 남아있다. 이른바 ‘돌잡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풍습은, 미신임을 알면서도 다들 엄청나게 진지한 척을 하면서 몰입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제법 보는 재미가 있음은 물론이요, 특히 어른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록 이때의 기억을 간직해 종종 과거를 회상하는 서글픈 수다 세션의 대화 주제로 올리기도 한다.


   로운이 앞에는 그야말로 별별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예로부터 이 물건들은 직업이나 복을 상징한다고 여겨졌다나. 판사봉, 청진기, 작은 책, 필기구, 장난감 마이크, 야구공, 마우스, 심지어 현찰까지 있었다. 로운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이 많았다. 사실 나는 여기에 올라갈 리스트가 진부하리라 예상해서 미리 사촌 동생과 얘기를 했고, 재미를 더하기 위해 우리가 쓰던 물건 몇 가지를 가지고 왔다. 향수, 애플워치, 캔들, 블루투스 스피커 등이었는데, 의미를 특정했다기보단 평소에 쓰는 소품들을 챙겨왔다. 다만 십자가 목걸이만큼은 의미를 담아서 가져왔는데, 할머니에게는 목사님이라고 둘러댔지만 속으로 랩퍼를 생각했다. 이건 그냥 취향 반영이다.


   이제 로운이가 선택할 시간이 왔다. 살면서 이 정도로 다양한 선택지를 처음 받아봐서 그런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감각적으로 이해했다. 이 중에서 무언가를 집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모두가 이 일생일대의 결정을 주목했다. 아이는 이것저것 살피고 둘러보더니 판사봉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책 쪽으로 몸을 돌렸지만 끝내 자세를 바꿔 향수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모여있던 어른들이 갑자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다들 그것을 집어 들지 않기를 바랐나 보다.

   그들은 각자가 보기에 더 고귀한 물건을 아이가 집도록 손뼉을 치며 방향을 유도하고 응원했다. 깃발이 아니라 정말로 소리 있는 아우성이었다. 로운이는 갑작스러운 어른들의 변화에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다시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비교적 젊은 이모 삼촌들은 그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며 포복절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편의 아수라장이 끝난 뒤 우린 식사를 했다. 행사의 주인공 역할을 마친 로운이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어느새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에 그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 동영상을 재생했을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재미를 가장하고 진지하게 임했던 그 돌잡이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사회의 너무나도 절묘한 풍자였기 때문이다. 취향과 꿈을 인정 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만류에 의해 포기하거나 갈등하는 스토리는 TV에서나 현실에서나 청춘물의 단골 클리셰가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거나 충분히 자유롭게 결정해도 괜찮은 선택인데도 목소리 가진 이들의 아우성에 의해서 제지되는 모습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경우에는 굳이 그들이 목소리를 낼 필요조차 없이, 우리는 경험에 의해서 움츠러들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스스로 선택을 검열하고 제한하지 않는가. 돌잡이의 해프닝은 마치 이런 사회에 진입하는 모종의 신고식 같았다.


    년이 지난 지금, 로운이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로운이가 선입견 없이 자신을 더욱 발견하고 꿈꿀 수 있도록 온갖 빛깔의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로운이가 자라날 세상엔 다양성을 존중받고 마음껏 결정할 수 있는 선택들이 더 많아질까. 그렇게 해도 사랑 받을 수 있고, 정죄와 배제를 당하지 않고, 함께 비 개인 뒤의 햇빛을 맞을 수 있을까. 그 세상을 열기 위해 어른인 우리는 지금 어떤 작은 실천을 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재미를 위해 허구를 섞은 이야기입니다. ‘로운’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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