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Apr 05. 2021

붓 가는대로 쓰는 것이 수필인가?



【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 】   

    _오덕렬 / 풍백미디어               


“붓 가는대로 쓰는 것이 수필인가?”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 자신이 나쁘게 되는 것이 마치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과 같다. 잘못을 알고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해(害)를 받지 않고 다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저 집의 재목처럼 말끔하게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도 이와 같다. 백성을 좀먹는 무리들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그런 뒤에 급히 바로잡으려 해도 이미 썩어버린 재목처럼 때는 늦는 것이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_ 「이옥설(理屋說)」이규보 (부분)          


800여 년 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늘 조간신문을 보는 느낌이다. 고려 때의 문신인 이규보가 행랑채가 퇴락하여 도저히 고치지 않으면 사용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집수리를 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다. 세 칸의 가옥 중 한 칸은 비가 샐 때 서둘러 기와를 갈았지만, 나머지 두 칸은 수리를 계속 미루다가 대대적인 공사를 하게 되었다. 미리 손보았던 한 칸은 재목들이 쓸 만했으나, 나머지 두 칸은 비가 샌지 오래되어 서까래, 추녀, 기둥, 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 쓰게 되었다. 수리비가 엄청나게 들었다.     




평생을 교직에 몸을 담은 교육자이자 수필가인 이 책의 저자 오덕렬은 이 책에서 주로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고전 수필 중 엄선한 15편의 고전수필을 실었다. 시대적으로는 고전문학 중에서 고대문학에 속하는 위의 글 「이옥설(理屋說)」에서부터 근세문학인 ‘규중칠우쟁공론(閨中七友爭功論)’까지다. 한문수필과 한글수필이 어우러져 있다.      


저자는 우리 고전문학에서 서구의 에세이(essay)에 해당하는 글은 단 한 편도 없다고 한다. 갑오경장(1894)이후 우리 수필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슬그머니 서양의 에세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자들 사이에서 ‘수필은 에세이’다. 아니다로 왈가왈부하게 된다. 우리 수필 이론이 없다보니 에세이 이론에 수필을 꿰맞춘 꼴이 되고 말았다. 두 파로 갈린 학자들은 결국 우리 수필을 에세이처럼 써야 한다는 데서 손을 잡았지만, 저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 고전수필을 제대로 연구했다면 에세이 이론에 수필을 자리 잡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구의 창작론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고전수필론(古典隨筆論)을 확립하여 내놓았어야 했다고 강조한다.     




“고전수필에서 현대수필의 싹과 줄기와 열매를 탐스럽게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현대수필인 「가람 문선 序」(이병기), 「달밤」(윤오영), 「보리」(한흑구)의 어느 구석에 에세이적 흔적이 묻어 있는가? 흰옷과 구들장 아랫목 등 한옥의 정서가 가득할 뿐이다.”     


글의 순서는 ‘대본’ (원전), ‘본론’(해설), ⟨참고 문헌⟩순서로 되어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수오재기(守吾齋記)’는 4단 구성으로 삶을 성찰한 고전수필로 소개된다. ‘수오재(守吾齋, 나를 지키는 집)’라는 이름은 다산의 큰 형님(정약현)이 자신에 집에 붙인 이름이다. 다산은 처음에 이 이름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가운데 나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러니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어디로 가겠는가.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산이 장기로 귀양 온 뒤에 혼자 지내면서 가끔 생각해보다가 하루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천하 만물 가운데 지킬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 오직 나라는 것만은 잘 달아나거니와 드나드는 데 일정한 법칙도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잠시 살피지 않으면 어디든지 못 가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꾀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이 겁을 주어도 떠나간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수필문학은 현대문학 이론을 수필 작법에 적용한 적이 없는 ‘붓 가는 대로 쓴 글’ 이라는 것이다. 사실 수필(隨筆)이란 한자어 속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긴 하다. 그 뜻을 너무 착실하게 따르다보니 ‘신변잡기’로 흘러가버렸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론부재의 ‘서자(庶子)문학’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고전 수필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과 수필을 이미 쓰고 있거나 쓸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필작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바라건대 이 책이 널리 읽혀 4천여 수필가들 눈에서 1백 년 동안 남몰래 흘려 온 ‘신변잡기’ 서러움을 깨끗이 씻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_계간⟨散文의 詩〉발행인 이관희 跋文          



#고전수필의맥을잇는현대수필작법

#오덕렬

#풍백미디어

#쎄인트의책이야기2021     


작가의 이전글 변하는 시대, 변화하는 세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