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 오늘의삶쓰기
오늘은 뭘 할까? 특별한 것도 없어서 기억을 뒤적뒤적.
문득 26년 전의 오늘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순간 머리와 몸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6주기였다.
뉴스로 삼풍 소식을 접했던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당시 우리나라가 끌어안고 있던 시대적 한계에 대해 생각해봤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와 한계를 드러냈던 사건으로써 말이다.
산업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의 건설 비리와 재벌들의 탐욕,
이를 뒷받침한 권력형 비리가 한 데 뭉쳐 만들어낸 지옥.
“강남 최고의 백화점이 무너지겠어, 에이, 설마~”
백화점의 이상 조짐을 눈치챈 사람들은 대개 이런 말을 했다.
그러면서 며칠 간의 조짐을 무시했다.
위험을 감지한 백화점 당사자들은 ‘설마’가 ‘혹시~’ 일지도 몰라서
당시 행사 중이던 보석만 빼내기 바빴다고 한다.
‘설마 무너지겠어!’의 그 설마가 진짜로 일어났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한국 최고급 백화점이 폭삭 내려앉았다.
그로 인한,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낳은 참사였다.
삼풍의 ‘에이, 설마~’를 꼭 닮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한 해 전 1994년에도 있었다.
출근 시간에 다리 중간이 폭삭 내려앉은, 부패와 비리의 총체적 사건이었다.
내가 유독 ‘삼풍’이란 단어에 멈칫하며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개인적 기억에서다.
지방에 거주 중이던 나는, 당시 서초동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다.
실습도 끝났겠다 서울 구경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마침 가까운 데였고, 그냥 내려가기 뭐한 명소라서 삼풍백화점 구경을 하고, 시외터미널로 급하게 이동했었다.
삼풍 지하를 지날 때는 사고가 일어났던 시간 대도 아니었고, 물론 위험은 감지조차 못 했다.
워낙 피곤했고 몇 시간 동안 버스에 시달렸던 처지라, 다음 날 뉴스를 접했던가?
붕괴 뉴스를 계속 접하면서, 어떨 때는 ‘에이, 아냐~ 그 전날에 갔었나 봐...’라며 기억을 헷갈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몇 시간 차이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걸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무마하고 삼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근 20년의 차이를 두고 우리 모두 ‘세월’을 경험했다.
세월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삼풍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서울 중심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나도 개인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의 우리 모두는 저물어가는 세월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국가는 뭐 하고! 설마 다 죽이기야 하겠어...”
“젊은 애들이라는 알아서 살겠지.”라며 내 아픈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찼던 날이었다.
“세월이 얼만데 그런 참사가 또 생기겠어!”
개인적으로 너무 바빠서 실시간으로 침몰하는 세월을 보면서도 삼풍 같은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설마’가 또 그 ‘설마’ 일 줄은...
그때는 몰랐다.
설마 20년 전의 그 설마들이 또 재현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삼풍보다 더하면 더한 권력형 비리의 총체가,
지는 세월로 인해 수면으로 떠올랐다.
‘시간 가면 나아지고, 발전한다’는 환상!
시간의 환상에 젖어 있었다.
보이지 않게 묻어두고 물 밑에서 풍기는 썩은 내는 무시했던 것이다.
세월은 시간의 문제로 해결될 게 아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문제였는데...
2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삼품과 세월의 참사를 떠올리며,
그때와(이 사회 속에서 나는)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나를 생각해 봤다.
1995년 ‘삼풍’은 대한민국 모두를 함께 울고 아파하게 했다.
하지만, 2014년의 ‘세월’에는 하나 되길 거부했다.
생각이 갈라졌고, 갈라진 마음이 다른 길을 걷게 했다.
어디서고 갈라진 생각과 마음 때문에 시끄러웠다.
벽이 된 서로를 향해 소리만 질러댔다.
나 또한 말을 섞다 보면 화만 나서, 마음에 없던 말까지 쏟아내기 일쑤였다.
세월은 흐르건만, 멈춰 선 채 좁혀지긴커녕 점점 더 벌어지는 것만 같다.
화보다 안타까움이 커졌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글을 쓰려는 건지...
나이 먹으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으나, 이것도 역시 시간의 착각이었나 보다.
글러먹었다.
모르겠어서, 일단 귀를 틀어막기로 한다.
노랫소리도 안 나오는 헤드폰을 낀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과 바람으로 살아가는지, 사는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혹, 20여 년 후에 또 이런 참사가 발생한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지만, 세상은 아무도 모르는 ‘설마’의 투성이니까.)
나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하고 있을까?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고 있을까?
여전히 갈라진 생각으로 핏대를 세우고 있으려나?
결국 같은 길로 가고 있는 우리들인데.
‘태어난다, 고해에서 발버둥 치다가 죽는다!’
비극 앞에서 함께 애도할 줄 아는 사람들의 나라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