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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그림 9월
[소행성] 환장 파티
9월 3일 - 오늘의삶쓰기
by
유이지유
Sep 3. 2021
쓴 글을 고쳐 쓰고 원고를 끝마치는 행위 ‘퇴고’.
대표적인 용어로 ‘개고, 퇴고, 탈고’가 있다.
개고(改稿: 원고를 고쳐 씀. 또는 그 원고),
퇴고(推敲: 시문을 지을 때 자구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
탈고(脫稿: 원고 쓰기를 마침).
뻘짓으로는 어디 가서도 안 빠지며 살았다.
웬만한 쪽팔림과 고통에도 끄떡없다고 자부심 쩔어 살았는데, 나를 백전백패시키는 상대가 있다.
아, 퇴고...개고든, 퇴고든, 탈고든, 이 만한 고통이 없다.
쓴 글을 읽고 고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정말 적성에 안 맞는다.
(이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을까?)
퇴고 방법으로 낭독을 해본다.
내가 쓴 쓰레기 초고를 내 목소리로 읽으며 고치기는...
정말 환장할 일, 환장 파티다.
쓴 글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현타 하는데 이 만한 게 없다.
자신의 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내서,
자기 비하의 쓰나미가 양 싸대기를 후려친다.
폭풍 치는 혐오에 스스로를 사형대에 세우고 싶어 진다.
“이 따위로 밖에 못 써. 이런 거지 같은 거 뭐 하러 써.”
“자원 낭비, 인생 낭비, 인간 퇴행 돌연변이의 증거, 없어지는 게 낫다.”
“안 쓰고 싶은데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렇다면 내가 끝내주는 수밖에. 감사히 여기도록!
받들어 총!”
*
다른 이들은 대체 이 환장 파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뭐라도 힌트를 구하고자 들여다본 에세이, 편지글, 작가노트, 자서전, 위인전, 글쓰기 방법서, 자기계발서, 작가 강연, 그 외 등등.
이런 걸 읽느라 들인 그 많은 시간에 일부를
퇴고하는데 썼으면 지금보다 덜 괴로웠을까?
왜냐면 그 책장 속에는 온통 징징거림.
글쓰기의 힘듦과 괴로움, 재능 없음의 비참함, 게으름의 자기 비하와 한심함 같은 징징거림만 가득했다.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각자 나름의 방법이 있긴 했지만,
뭐 하나 뾰족한 게 없었다.
그래서 이짓저짓을 해본다.
낭독법은 플로베르 때문이다.
몇 년에 걸쳐 소설을 끝마친 플로베르는
자신의 소설이 어떤지를 알고 싶어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3박 4일에 걸쳐 펼쳐진 낭독회가 드디어 끝났다.
(며칠을 합숙하며 소설을 들은 친구들도 대단하지!)
친구들의 평은 이러했다.
“부덕한 그 소설을 당장 저 벽난로에 집어던지게!”
믿을 만한 친구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플로베르는 그때 그 소설을 벽난로에 안 집어던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보바리 부인>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대소설의 출발’이라 평가받았다.
*
나는 몇 번이나 내 목소리로 읽는 것도 괴롭고,
낭독회를 할 만한 인맥도 없는 지라,
다른 방법을 이용해 본다.
플로베르 시대 사람도 아닌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지.
‘읽어주기’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이 읽어주는 거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감지덕지다.
기계 목소리에 금방 적응이 된다.
몇 번이나 들으려면 오히려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기계음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뻘짓이면 어떤가.
아무튼 퇴고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런 짓, 저런 짓을 해본다.
각자 나름의 방법이 있긴 했지만,
뭐 하나 뾰족한 게 없었다.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게 있다면...
어떤 비참한 심경, 어떤 상황, 어떤 혹평 속에서도
그들은 모두, ‘쓰는 인간’이었다.
한 자라도 쓰기 위한 몸부림과 발광하는 자들이 작가였고,
패배의 두려움을 알면서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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