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환장 파티

9월 3일 - 오늘의삶쓰기

by 유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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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을 고쳐 쓰고 원고를 끝마치는 행위 ‘퇴고’.

대표적인 용어로 ‘개고, 퇴고, 탈고’가 있다.


개고(改稿: 원고를 고쳐 씀. 또는 그 원고),

퇴고(推敲: 시문을 지을 때 자구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

탈고(脫稿: 원고 쓰기를 마침).



뻘짓으로는 어디 가서도 안 빠지며 살았다.

웬만한 쪽팔림과 고통에도 끄떡없다고 자부심 쩔어 살았는데, 나를 백전백패시키는 상대가 있다.


아, 퇴고...개고든, 퇴고든, 탈고든, 이 만한 고통이 없다.

쓴 글을 읽고 고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정말 적성에 안 맞는다.

(이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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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방법으로 낭독을 해본다.

내가 쓴 쓰레기 초고를 내 목소리로 읽으며 고치기는...

정말 환장할 일, 환장 파티다.


쓴 글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현타 하는데 이 만한 게 없다.

자신의 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내서,

자기 비하의 쓰나미가 양 싸대기를 후려친다.


폭풍 치는 혐오에 스스로를 사형대에 세우고 싶어 진다.

“이 따위로 밖에 못 써. 이런 거지 같은 거 뭐 하러 써.”

“자원 낭비, 인생 낭비, 인간 퇴행 돌연변이의 증거, 없어지는 게 낫다.”

“안 쓰고 싶은데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렇다면 내가 끝내주는 수밖에. 감사히 여기도록!

받들어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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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들은 대체 이 환장 파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뭐라도 힌트를 구하고자 들여다본 에세이, 편지글, 작가노트, 자서전, 위인전, 글쓰기 방법서, 자기계발서, 작가 강연, 그 외 등등.


이런 걸 읽느라 들인 그 많은 시간에 일부를

퇴고하는데 썼으면 지금보다 덜 괴로웠을까?


왜냐면 그 책장 속에는 온통 징징거림.

글쓰기의 힘듦과 괴로움, 재능 없음의 비참함, 게으름의 자기 비하와 한심함 같은 징징거림만 가득했다.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각자 나름의 방법이 있긴 했지만,

뭐 하나 뾰족한 게 없었다.


그래서 이짓저짓을 해본다.


낭독법은 플로베르 때문이다.

몇 년에 걸쳐 소설을 끝마친 플로베르는

자신의 소설이 어떤지를 알고 싶어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3박 4일에 걸쳐 펼쳐진 낭독회가 드디어 끝났다.

(며칠을 합숙하며 소설을 들은 친구들도 대단하지!)


친구들의 평은 이러했다.


“부덕한 그 소설을 당장 저 벽난로에 집어던지게!”


믿을 만한 친구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플로베르는 그때 그 소설을 벽난로에 안 집어던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보바리 부인>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대소설의 출발’이라 평가받았다.


*

나는 몇 번이나 내 목소리로 읽는 것도 괴롭고,

낭독회를 할 만한 인맥도 없는 지라,

다른 방법을 이용해 본다.

플로베르 시대 사람도 아닌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지.



‘읽어주기’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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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읽어주는 거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감지덕지다.

기계 목소리에 금방 적응이 된다.

몇 번이나 들으려면 오히려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기계음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뻘짓이면 어떤가.


아무튼 퇴고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런 짓, 저런 짓을 해본다.



각자 나름의 방법이 있긴 했지만,

뭐 하나 뾰족한 게 없었다.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게 있다면...



어떤 비참한 심경, 어떤 상황, 어떤 혹평 속에서도

그들은 모두, ‘쓰는 인간’이었다.


한 자라도 쓰기 위한 몸부림과 발광하는 자들이 작가였고,

패배의 두려움을 알면서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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