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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그림 9월
[소행성] 유언
9월 7일 -오늘의삶그림
by
유이지유
Sep 7. 2021
유언을 적었다.
뭘 적어야 하나...
세상사 알 수 없는 법이니,
만의 하나를 위해서.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백신 맞는 날!
당연히 1번이겠지만.
[단상단편] 유서를 쓰다.
유서를 적었다.
예전에 적을 때는 뭐를 적어야 할까, 멋들어지게 적으려 애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시간과 감정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걸까, 여러 일을 겪으며 집착을 좀 내려놓게 된 걸까?
오늘 와서는 적으려니 막상 쓸 게 없네.
일단 이 유언을 누구에게 남겨야 할지부터 고민됐다.
명확한 대상이 없어서 주어를 적지 못했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문득 나를 떠올릴 이가 누가 있을까?
적어도 그만 안 적어도 그만.
있던 자가 없어지면 남은 사람들이 할 물건 정리 정도를 적었다.
금전에 대해서 적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죽고 나서 남는 돈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뒷정리에 사용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쓰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줄을 추가했다.
내가 남기는 돈이 있건 없건 가족이었던 그들의 삶이 좌우될 일은 없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아동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애증이 많은 이 육신까지 기
증을 부탁할 수는 없었다.
*
대체 내 삶이라는 게 뭐였나?
이토록 아무 의미가 없나?
내가 있다 사라진 자리에 남을 만한 것 하나가 없단 말인가?
남기고 싶었던 유일무이는 나의 소설이다.
많은 민폐를 끼치지는 않으려 애썼다. 타인에게든, 다른 생명에게든.
내 욕망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존재가 있을까 봐, 많이 갖지 않으려 조심했다.
이런 마음이 담긴 글을 써내고 싶었다.
그러나 겁쟁이인 나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인해 결국 아무것도 써내지 못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 그토록 애썼던 글은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하고
내 육신과 흩어져버리는, 고작 그 정도였다.
번듯한 것이 없어, 아쉽고 허망하다 여겨질 삶이었다.
참으로 섭섭하네!
.
.
아니, 아니다.
그런 글이라도 썼기에 지금을 살았다.
허접잖은 글을 써대던 시간이 나를 포기하지 않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된 거 아닌가?
구원 아니겠는가!
어떠한가, 모두 사라질 텐데…
남김 없는 별먼지로 흩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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