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꿈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내가 인생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자신의 꿈과 현실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에 가깝다. 여기다 적고는 있지만, 지금 이 생각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나 자기 자신 스스로가 꿈에 자신이 없다면, 이 글을 읽고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였다. 훌륭한 선생님들을 여럿 만났고, 선생님들 말이라면 거의 전적으로 믿었다. 다른 친구들이 다 싫어하던 선생님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존경했다. 고등학생 때도 선생님을 좋아해서, 고민이 생기면 야자 시간에 찾아가 한두 시간씩 상담을 받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 일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기분이 든다.
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있는 대회란 대회는 아무거나 다 나갔는데 유난히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인정해주셨다. 그 뒤로부터 난 스스로에게 '글 잘 쓰는 사람'이었다. 부모님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소설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고, 그땐 웹소설이 없었지만 인터넷 소설이 있었다. 대부분이 텍스트 파일로 이뤄진 걸 보고 나도 내 소설을 파일에 적어 인터넷에 올렸다. 공책에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가 읽어본다는 게 정말 기쁜 일이었다. 글 쓰는 대회에 나가는 건 중학생이 돼서도, 고등학생이 돼서도 계속됐다. 가면 갈수록 더 잘하는 친구들이 나타나 가끔 좌절하기도 했지만 놓지는 않았다.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이걸로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예술 분야의 작가는 저수입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세상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뛰어넘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력으로나 아이디어로나, 내 능력치가 충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만화가라는 꿈도 일찍이 접었다. 만화를 공책에 그려서 친구들한테 보여줄 정도로 좋아했지만, 나와 친한 친구가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 뒤로 점점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작가든 만화가든 아니면 그냥 화가든 나보다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난 그런 걸로 돈을 벌어 살 수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나와 같은 이유로 꿈을 접은 사람이 아마 많을 것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에게 공부하라며 엄마가 그랬다, 그런 건 나중에 취미로 하라고. 화가 났다. 왜 내 미래를 마음대로 엄마가 정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내가 작가나 만화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그래도 엄마가 하는 말 정도로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만국 공통, 엄마가 하는 말은 별로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글쓰기를 그만두게 된 순간이 있었다. 대회 출품 때문에 썼던 글을 국어 선생님이었던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을 때였다. "00 이는 글을 잘 쓰는데, 이런 글보다는 산문을 잘 쓰지 않니?". 내가 생각했던 정치적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었다. 선생님은 꼼꼼하게 몇 가지를 지적했다. 부끄러웠다. 잘 쓴 것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내 글이 초라해졌다. 그 뒤로 마음을 먹었다. 소설은 쓰지 말자. 선생님 눈에도 보잘것없는데 다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지. 어차피 내가 쓴 소설로 '성공' 할 수 없을 것이고,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글쓰기는 취미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충격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 여겼다. 내가 알고 있던 현실을 남의 입에서 들은 것뿐이었고, 새로운 말도 아니었다.
그 말이 나를 죄고 있었다는 건 몇 년 뒤에나 깨달았다.
그 뒤로 나도 모르게 글 쓰는 걸 피했다. 언젠가 취미로 할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글 쓰는 걸 멈추고 당장 필요한 입시에 집중했다. 문예창작과 나 예술전문학교로 진학해 전문 예술인이 되면 배고픈 직업을 가지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대회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나가서 뭘 하나 싶었다. 입시에 수상이력이 중요하다지만 글쓰기 대회 수상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자취를 하다가 본가에 내려와 있던 날이었다. 아빠는 가끔 술에 취해 들어오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붙잡고 하는 편이다. 그 날 저녁도 그랬다. 부엌에 뭔가를 가지러 갔는데 아빠가 들어왔다. 너 뭐하고 살 거냐부터 시작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다. 별 대꾸 안 하고 한숨만 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뜬금없이, "그 국어선생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네 펜을 꺾었다!"라며 아빠가 슬퍼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내가 겨우 그런 말로 내 꿈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선생님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거라고 했다. 내가 글 쓰는 걸로 못 먹고살 것 같아서 포기한 거라고 했다. 펜을 놓은 건 나니까. 내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아빠가 뭘 알고 저러나 싶었다. 그래도 아빠는 계속 "아니야, 그 선생이라는 사람이 네 꿈을 꺾은 거야! 네가 그랬잖아, 선생님이 못 쓴다고 했다고."라고 했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건 맞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날 일이 잊히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게 지적했던 그 날처럼. 내가 스스로 글쓰기를 그만둔 이유. 그건 내가 그만큼 나를 믿지 못하니까. 내가 유망하지 못하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생각에 쐐기를 박아줬다. 어차피 다른 누군가보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뭐든 꾸준하게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되어 있다. 하다 못해 그걸로 돈 벌어서 먹고 살 정도는 된다."라는 말을 누군가 했다. 와 닿지 않았다. 적당히 할 줄 알면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린 나의 세상에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누가 봐도 잘했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지 않을 정도의 결과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몇 년째 자신을 믿고 노력해서 그 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꼭 아주 엄청난 퀄리티의 작품만 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은 잘하는 사람만으로 넘쳐나지 않듯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어느 정도는 돈을 벌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작품을 만들며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필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꾸준히 연재하고, 작품이 매력이 있다면 그 글은 팔린다. (물론 이 산업분야 종사자에겐 복잡한 말이겠지만, 어디든 딜레마는 있으므로) 이게 비단 글쓰기 분야에만 국한된 점이 아닐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에 당장 인생을 거는 건 무모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작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보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언제든지 다시 펜을 잡아도 좋다. 당신이 쓰는 글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작가로 서 엄청난 일을 한 건 아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다. 아무도 당신에게 글을 잘 쓴다고 해주지 않아도, 혹은 누군가 당신이 글을 쓰며 먹고살긴 힘들지 않냐고 말해도 펜을 놓지 말라고. 그때 단념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흔들리던 나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할 핑계는 충분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나는 이렇게 못 쓸 거라고 좌절하고 스스로 옥죌 수는 있어도 포기하지 말자. 글 쓰는데 정답은 없다. 당신의 글이 10대에 빛을 볼지, 40대에 빛을 볼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글 쓰는 게 좋다면 계속 쓰자. 언젠가 빛을 볼 그때를 위해 끊임없이 갈고닦자.
다시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다고 해도 17살 학생에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타인의 가능성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특히 어릴수록 더. 기억해주길 바란다.
글쓰기는 선생님이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엄마가 나와 가장 친한 친구를 비교하며 한 말이었다. 내가 기분 나쁜 티를 내자, 너도 잘 그리는데 그 친구는 정말 센스가 있다고 했다. 꼭 그 친구가 아니어도 알고는 있었다. 나보다 잘 그리는 친구가 아주 많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점점 포기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초등학교 땐 그래도 상이라도 받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갈수록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 번은 별생각 없이 나간 대회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애들이 그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애초에 내가 재능이 없으니 못 그리는 건 당연하다며 애써 나를 다독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건 엄마 때문이었다. 유년기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는 우리 가족이 살던 노란 장판 깔린 그 집. 제대로 된 부엌도, 붙박이장도 없는 집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엄마가 그린 사과를 따라 그렸던 게 기억난다. 엄마가 그린 사과와 내가 그린 사과가 얼마나 닮았는지, 꼭지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난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그림도 누군가가 더 잘한다는 사실 때문에 손에서 놓았지만, 그림은 더 빨랐다. 더 어릴 때부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이라는 분야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없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누가 잘하고 못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만의 색깔이 중요한 거야.라고들 하지만 10살짜리가 뭘 알겠는가. 당장 보이는 기술이 더 중요해 보이는 걸. 누구든 기술적인 부분은 연습하면 나아질 거고, 그걸 어느 정도 쌓고 나면 너만의 그림을 찾을 거야.라고 말해줬다면 나도 계속했을지 모른다.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여느 다른 10대와 같이, 다른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고 스스로 조금씩 나는 안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그랬다. 그렇게 또 남의 말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했다. 예전엔 그랬는데, 이젠 안 그려.라는 말을 하게 됐다. 몇 년째. 만화를 그려서 보여주길 좋아했던 건 과거가 됐다. 웃기지만 중학생이 되고 얼마 안 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18살, 고등학교 2학년.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와 어울려 다니던 때였다. 선배들 졸업식 리허설을 하느라 강당에 듬성듬성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친구와 둘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미술 선생님이 우리 있는 곳으로 다가오셨다. 미대 입시를 하는 친구가 옆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그 친구에게 용건이 있으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내게 말을 거셨다. 그리고 대뜸 물으셨다. "너는 미대 준비 안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선생님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계실 거라는 생각을 못했고 (그야 미대 입시생도 아니고, 따로 찾아간 적도 없는 데다, 미술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고 그마저도 수요일이라 행사가 많으면 여지없이 희생당하는 과목이니까) , 나는 선생님께 미대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그저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며 생각을 못 해봤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리는 게 좋았지만 나보다 잘 그리는 애들이 많아서 낙담했고, 포기했다는 속사정은 너무 길고 우울한 이야기였다.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선생님은 "재능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해보지"라며 아쉬워하셨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별 의미 없는 말이라고 넘기려고 했다. 인정받은 건 기뻤지만, 이미 난 결정했고 그 결정이 옳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놓은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그런데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부럽다. 나한텐 저런 말씀 해주신 적 없는데." 나는 놀라서 재차 물었다.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고, 미대 입시도 열심히 준비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내게 하셨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친구의 그 말 덕인지 나는 그림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정말로 다시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에 가고 나서의 일이지만. 여전히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최고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매일 그리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걸 간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글이든, 그림이든.
물론 현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다른 사람과 또다시 비교하게 되겠지만,
그때마다 떠올리면 된다.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또 이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