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필요한 시점
떡, 고추장, 간장, 설탕.
떡볶이의 매력은 바로 이것. 떡만 있으면 다른 재료는 언제나 있다. 더하자고 하면 취향대로 무엇이든 더할 수 있는 것이 떡볶이라는 음식이지만, 이도 저도 없을 때. 아니, 이도 저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이 네 가지 재료만으로도 떡볶이는 충분하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 떡볶이 육수로 삼고, 같은 육수로 어묵탕도 만들면서 어묵 몇 쪽도 떡볶이에 넣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육수를 내는 것도 버거운 날이 있다. 멸치는 볶아 비린내를 날리고, 다시마는 너무 끓이면 안 되니 떠오르면 건져내야 하고, 멸치가 잘 우려 졌을까, 조금 더 우려야 맛이 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그런 날은.
떡, 고추장, 간장, 설탕.
그것들만 꺼내고 물을 끓인다.
고추장은 대충 적당히 풀고, 조금 싱거우면 간장을 넣고, 설탕도 한 숟갈. 조금 달게 먹고 싶으면 설탕 조금 더. 정해진 답 없이 그냥 내 기분에 따라 간을 맞추면 된다. 마음이 추운 날은 넉넉한 국물 떡볶이로, 속이 허한 날은 진득하고 매콤하게 만들어 먹는다. 조금 짜더라도 조금 물이 많더라도, 떡볶이는 그대로도 충실한 떡볶이가 되어 내 마음을 달래준다.
나도 그렇게 떡볶이처럼. 가끔은 너무 힘들이지 않고도 나이고 싶은, 그런 날들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맞는 건지 마음 한 가득 이런저런 고민 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가진 떡, 고추장, 간장, 설탕만 가지고도 행복하고 싶은 그런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떡볶이가 먹고 싶다. 요리를 할 기운은 남아있지 않고, 라면을 끓이는 것은 나 자신에게 야박하게 느껴지고, 그래도 위로는 받고 싶은 그런 날은, 떡볶이를 만든다.
어릴 적 엄마가 차려 주셨던 생일상 떡볶이, 쉬는 시간 냉큼 달려가 친구들과 먹던 매점 떡볶이, 서울 외출을 허락받은 금요일 오후 이대 앞 떡볶이, 동생이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꼭 포장해 갔던 학교 앞 떡볶이. 삶이 던져놓은 온갖 고민과 아픔으로 마음이 헝클어지기 이전의 시절. 그 쉬웠던 행복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떡볶이를 먹는다.
쫄깃하고 매콤하고 짭짤하고 달콤한 떡볶이 한 접시를 비워 내고. 이제 다시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