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첫번째 스탬프는?
멋대로 29가 가고 서른이 왔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날짜가 넘어갔을 뿐인데. 바뀐 건 없고 자책감만 커졌다. 30살이 되면, 뭔가 하나쯤은 변했거니 했다. 다 꽝이었다.
빌려 본 일본어 교재도 벌써 50권을 넘겼다.
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내 일본어는 거기까지였다.
슬프게도 어느 교재든 마의 챕터 1, 20페이지를 넘기진 못했다.
호기심으로 왔던 길은 여기까지였다.
이대로 일본어와 바이바이해도 아쉬울 거 하나 없었다. 그랬는데, 그래야만 했는데 올 것이 왔다.
30살 봄, 구청 앞 사진관에서 나는 부동자세로 카메라를 쳐다봐야 했다.
"학생, 고개 살짝 왼쪽 아래로. 사알~짝. 그렇지." "거기서 그대로 숨 멈추고. 숨!" "오케이. 그대로 한장 더."
증명 사진이 나오기까지 30분. 그대로 구청 여권과로 갔다. 5년짜리가 얼마고 10년짜리는 5년짜리 두배인데 기왕이면 10년짜리가 좋다했다.
영어 이름도 쓰던 이름이 아닌 다른 것을 썼다.
틀리지 않으려고 견본 신청서를 보면서 쓰느라 손이 다 후덜 거렸다. 급하다고 해서 하던 장사까지 쉬고 왔다. 그런데도 일처리는 느렸다.
그렇게 만든 여권의 첫 스탬프는 싱가폴이었다. 비지니스 세미나를 들으러 가는 사촌 언니의 덤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