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보는 철학
'타자'는 낯설고 위협적이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타자성을 박멸시켜왔다. 포식동물이었던 사자는 이제 동물원의 구경거리에 불과하고 기아와 가난도 찾아보기 힘들다.
타자성이 죽고 동일성이 과잉된 사회에서 인간은 상처받을 일이 거의 없다.
"Sometimes you gotta bleed to know that you're alive and have a soul"
<Tear in my heart(Twentyone Pilots)> 중
그러나 위의 가사처럼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우리는 가끔씩 상처받고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상처받고 이 상처를 생(生)으로 변용시킬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보우'를 통해 살펴보자.
유바바의 아들 보우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고집불통 꼬맹이다. 모난 곳 없이 매끄러운 베개들로 가득찬 방에서만 생활해온 보우는 상처받아본 적이 없는 온실의 화초다. 이러한 보우에게 어느날 치히로와 함께 바깥세상이라는 타자가 찾아온다.
바깥세상이라는 미지의 세계, 즉 타자로부터 자신의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보우는 치히로에게 밑도끝도 없이 밖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억지 논리로 치히로를 붙잡아두려는 자기면역과정에 실패한 보우는 결국 '피'를 본다. 상처, 피에 익숙하지 않은 보우는 울며불며 날뛰다가 '나는 두렵지 않아!'라고 결론을 내린다. 끝까지 자신이 타자 위에 군림한다고 주장하면서 보우는 다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만했던 보우의 육중한 몸집은 제니바(유바바의 쌍둥이 언니로 보우를 생쥐로 만든다)라는 타자에 의해 작아진다. 이는 보우의 자아의 크기가 작아지는 '탈아'의 과정으로 보인다. '탈아'의 과정을 통해 보우는 치히로라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보우는 치히로를 따라가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성장을 통해 보우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아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퉁명스러웠던 보우의 얼굴은 편안한 웃음으로 활짝 핀다.
보우의 성장과정에서 상처의 미학이 드러난다. 임시방편으로 치료한 상처는 곪기 마련이라던가 옳지 않은 것을 고집하는 자기면역과정은 결국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우리의 자아는 너무나 어릴지도 모른다.
<Tear in my heart>의 다음가사
"But it takes someone to come around to show you how"
처럼 'Someone', 타자를 직면하고 그것이 주는 상처를 한 껏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가. 삶이라는 상처, 상처라는 흉터, 흉터라는 나이테를 삶의 궤적에 그려나갈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