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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07. 2024

양볼이 차갑다.

시간아 멈춰줄래?

아침 공기가 다르다.

바람까지 불어 굉장히 차갑다.

아들 등굣길에 잠시나마 차로 갈까 고민했지만 아들과의 추억을 쌓기 위해 걷기로 했다.

단단히 껴 입히고 모자 달린 패딩을 입혔다.

차가운 바람이 옷 속으로 스치듯 들어오니 아들의 웅크려지는 몸을 안을 수밖에 없다.

사이좋게 안으면서 걷다가, 뛰다가,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정하기로 했다.

"아들아, 항상 가던 길 놔두고?"

"어디로 가든 길은 나오잖아요~^^"

"현명한 자슥, 좋아, 해보자! 가위~바위~보~!"

아들 녀석이 웃어 보이면 일단 해야 한다.

안 할 수가 없다.

아들의 눈웃음은 주관적으로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참 예쁘다.

항상 웃으면서 사고 치는 아들덕에 엄마 속은 용암이 끓고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웃는 게 사랑스럽고 예쁘게 생긴 장난꾸러기일 뿐이다.








늘 같은 것만 고집하던 내가 알다가도 모를 아들의 마음처럼 오늘은 이리도 가보고 저리고 가보며 새로운 길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낯설지만 새로움을 느꼈다.

낯설다는 감정이 어색하기만 했던 내가 아니었나 싶지만 이런 감정조차 아들 녀석에게 배운다.

아들은 온몸으로 놀아주는 엄마 아빠가 참 좋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이지만 내 마음속에서 어느 특정 선만 넘지 않는다면 흥미롭기도 하고 즐겁다.

어쩌면 늘 차분하게 한 자리에서 놀던 8살의 내가 짝꿍을 제대로 만나 신나게 뛰어노는 기분이다.

마치 과거의 나와 미래의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단짝 친구라도 된 듯이 즐거운 날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자제가 필요한 날이 있다.

자꾸만 특정 선을 넘어서 문제가 되는 날은 도를 닦는 기분으로 산다.

나가서 놀다가 사고 칠 때면 아주 잠시 내 아들이 아닌 걸로 생각하기도 한다.

많이 내려놨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란히 등교하는 친구처럼 걷고 뛰고 웃고 떠들며 어느새 20분이 지나 학교 앞에 도착했다.

아들의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엄마로 돌아간다.








등교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또 40분 거리를 운동하듯 빠르게 걸었다.

혼자 걷는 길이 춥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조용했다.

장난감이 많았던 때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얼음땡 놀이나 주야장천 했던 추억이 떠 오를 뿐이다.

아들 녀석과 온몸으로 놀아주던 시간들이 최고의 기억이고 추억이지만 크면 기억이나 해줄까 싶다.

어릴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카페 앞이다.

갑자기 따듯해진 실내 공기를 느끼니 양볼이 차게 느껴진다.

커피 한 잔 주문해서 2층으로 올라오니 카페 내부로 들어오는 햇살이 반겨준다.

역시, 아침에 마시는 커피 첫 모금이, 이 익숙함에 안정감을 느낀다.

음악까지 좋으니 오늘 시작도 좋을 수밖에 없겠다.

서운한 건, 가을이 오기 무섭게 떠나려는 것 같아 아쉽다.

조금만 더 있다 가주지, 뭐 그리 급하다고,

"가을이 너도 운동가니? 파워 워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이제 진짜 양볼이 차가울 일만 남은 건가?

겨울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들 녀석과 내기해서 지면 양보 하듯이, 가을과 겨울이 내기해서 겨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아들 녀석도 어느새 쑥쑥 커있을 모습이 상상된다.

내년에도 같이 뛰며 놀 수 있을까?

아들의 성장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다.

부모와 아들 사이에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받아들여야겠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안심해야겠지?

아빠가 항상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는 아침이다.

"너희는 건강하기만 하면 돼! 건강이 제일 최고야!, 공부 못 해도 돼! 아프지만 말자!"

엄마가 되어보니 그 말이 맞다.

다른 엄마들 학원, 공부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대화 주제를 바꿔보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우리 아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으니 아들과의 추억을 하루라도 더 쌓아야겠다.

더 신나게 놀아줘야겠다.

내가 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실컷 웃고 싶다.

아들이 예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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