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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14. 2024

뜬금없이 여행 플러팅?

고장 난 거절, 로봇이 된 느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임기응변이 전혀 안 되는 사람, 이불킥을 불러일으킬만한 행동을 하고 다음엔 똑 부러지게 얘기해야지, 뒤늦게 다짐하는 사람.

동네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나보다 2살은 많다.

대화를 해보니 통하는 부분도 꽤 많다.

생각하는 사고나 가치관이 바른 듯하여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훅 치고 들어오는 평소 일정에 대한 물음에 얼버무리는 실수를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평소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1년 내내 툭하면 남의 아이를 봐주던 상황이 생각나며 행여나 같은 상황이라도 생길까 봐 당황스러웠다.








거의 1년 가까이 봐놓고 이제 와서 전화번호를 공유했지만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잘 못 맺어진 인연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내가 자주 걷고 등산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다는 그 언니, 빠르게 훅 치고 들어오는 탓에 당장 내일 오전에 뒷 산이라도 함께 올라야 할 기세다.

나도 모르게 얼버무리다가 "네 좋아요" 해버렸다.

진짜 좋은 걸까?

갑자기 내 영역에 들어오려는 사람, 이미 1년 가까이 인사도 하고 간단한 대화도 주고받았지만 뭐가 문제일까?

아주 당연하게도 내일 오전에 시간도 많다.

걷는 것도 등산도 당연히 좋아한다.

대체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마음, 편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다.








갑자기 다음엔 또 주말에 아이를 아빠에게 맡겨놓고 등산을 가잔다.

등산하고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 하잔다.

나는 사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한다고만 생각했고 늘 함께였기에 또 당황스럽다.

심지어 내려와서 막걸리라.. 술도 잘 즐기지 않을뿐더러 친하지 않은 관계와는 절대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

당황에 또 당황 대잔치다.

설상가상 등산하자는 시간대도 오후다.

점점 불편해지는 대화, 나는 아침형이다.

새벽 5시에 만나자고 하면 일찍 서둘러서라도 나가지만 오후 5시면 아침형인 나에게 체력은 이미 방전되는 시간이다.

이미 고장 난 나는 유연한 사고는커녕 앞이 깜깜하다.

갑자기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계획에도 없던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늘 이렇게 당황만 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주말은 항상 신랑하고 애 데리고 놀러 다녀서요^^;;"

"한 번 맡겨놓고 나와요~^^"

"아...ㅎㅎㅎㅎ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아무래도 편하게 던진 말을 내가 또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마냥 부담이다.

나의 사회성은 이렇게 또 질질 끌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대로는 불편한 관계로 지낼 것이 눈에 선하다.

"언니, 나는 사실 평일이 더 시간내기 좋아요~ 아침에 등교시켜 놓고 등산 다녀오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주말엔 가족이랑 함께하는 게 익숙해서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심지어 저는 오후보단 오전 시간대가 편하고요^^;;"

"왜요~ 한 번도 주말에 약속 잡은 적 없어요?"

"있어도 친한 친구들이요~ 그리고 당연히 가족모임이요~^^;"

말이 많아진다.

당황했다는 증거다.








거절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이렇게 말을 꺼낸 것조차 용기다.

말을 안 해도 불편했겠지만 말을 하고도 세상 불편하다.

내친김에 주절주절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저는 천천히 친해지는 편이라 주위에 친한 사람들만 있어요~ 친해져야 편해지고 편해져야 만나는 시간대도 부담 없고, 친해져야 술도 마시고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천천히 친해지다 보면 결국 오래 인연이 이어지더라고요^^ 20년 이상 친구들도 있고, 앞으로도 알게 되는 사람들과 여행도 편하게 다닐 만큼 돈독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고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만 또 진지해진 분위기다.

이미 고장 났다.

"우리가 더 친해지면 편해질 테니 천천히 알아가요^^;"

"그래요~ 절대 부담 갖지 말아요~!"

"네~^^;; 나중에 애 다 키워놓고 편하게 맥주 한 잔 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래요~^^"

나 참, 당장 주말에도 안 나간다고 어색하게 거절해 놓고 애 다 키우고 놀러 가자니, 맥주? 여행? 묻지도 않은 말을,  관심도 없을 말을,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댄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언니지만 이미 나는 어색할 대로 어색해진 탓에 분위기 마저 고장 났다.

갑자기 뭐라도 홀린 듯 급 피로감이 몰려온다.

나는 왜 항상 이모양인가, 갑자기 스스로 채찍질을 하지만 분위기라도 비꿔보고 싶은 마음에 내일 오전에 등교시키고 차 한 찬 하자고 말을 돌렸다.

언니도 흔쾌히 알았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어색함을 감지했을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오늘도 분명 이불킥이다.

세상 오버란 오버를 다 했다.

분명 인연이 되려고 그렇게 마주치고 대화꽃을 피우고 전화번호까지 공유한 것을, 나는 왜 고장 난 걸까?

내 평소 일정, 계획이 변하게 될 생각만 해도 당황스럽다.

나는 역시 혼자 다녀야 할까?

입만 열면 청산유수, 임기응변에 능하고 융통성 있게 대화 흐름을 바꾸는, 넉살 좋은 사람들의 능력이 부러운 오늘이다.

당이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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