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부동산, 이상한 부동산, 좋은 부동산 (2)

by 은수


‘헛똑똑이’란 말은 그 시절 나한테 딱 맞았을 거다. 아이 용품 하나도 질 좋고 싼 거를 산다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발품을 팔아 사면서 정작 전 재산이 걸린 집을 사는 데 그렇게 허술할 수 있었다는 게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전세살이가 반복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집이 없을 때 ‘정착’에 대한 욕구는 더 커진다. 막상 집이 생겨서 몇 년 살다 보면 지겹고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자발적인 이사가 아니라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하는 이사를 반복하다 보면 내 집이 간절해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니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초겨울이라 날이 꽤 추웠지만 아이를 데리고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녔다. 한번 나갈 때마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옷을 겹겹이 입히는 것도 일이었지만 내 집이 생긴다는 기대 때문에 번거로운 줄도 몰랐다. 그때만 해도 부동산은 내게 문턱이 높은 곳이어서 낯선 부동산에 들어가려면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예산을 얼마나 투명하게 밝혀야 하는지, 아무런 요령이 없어서 긴장됐다.


처음에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부동산이면 무조건 쫓아다녔다. 내가 생각하는 조건과 맞지 않는 집이라도 ‘한번 보기만 하라’는 사장님 청을 거절하기가 뭐해 졸린다고 우는 애를 업고 달래 가며 기꺼이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다닌 끝에 제일 마음에 드는 집은 신발장이 너무 예쁜 집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유행하던 화이트 하이그로시 장과 전면 거울이 설치된 현관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입구가 화사하고 반짝거리니 그 집의 모든 게 다 근사해 보였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현관만 과하게 꾸몄을 뿐 나머지 내부는 평범했던 집이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그 집을 거의 계약할 뻔했다. 그런데 동행했던 다른 실장님이 가만히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저기, 나야 그냥 이 집 계약하면 우리 부동산 입장에선 좋은데 솔직히 말하면 좀 마음에 걸려서요. 이 집 앞에 공터가 엄청 크게 있잖아요? 지금 그 앞으로 몇 년간 상가시설과 대단지 아파트 공사까지 있을 거래요. 지금이야 모르지만 내년부터 먼지 날리고 소음 심하고 이 집은 아마 사람들이 기피하는 동이 될 거예요.

집 내부야 들어가기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바꿀 수 있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살면서 조금씩 공사하는 방법도 있는데 아파트 동과 호수는 한번 정해지면 이사하지 않는 한 바꿀 수가 없으니 제일 중요한 건데 애기 엄마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이층집.jpg 사진출처 unsplash

얼마나 어리숙하고 딱해 보였으면 그런 조언을 해줬을지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부동산 중개인 이미지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개료를 챙기기 위해 몰인정하거나 비도덕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정이현 작가의 <서랍 속의 집>에선 감언이설로 주인공을 부추겨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파는 중개인이 나오고 가족 제도를 오싹한 스릴러물로 표현한 영화 <비바리움>에서는 부부를 파멸로 이끄는 기괴한 중개인까지 등장한다.


실제로 만난 부동산 중개인들은 어떤 극단에 치우친 분들보다는 그 나름대로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거래를 잘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많았다. 어리숙한 나를 안쓰럽게 보고 조언해 준 실장님도 겉으로는 무뚝뚝한 분이었지만 장사만 생각하는 분은 아니었던 거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실장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 집의 여러 단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층이나 향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쪽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안 사기로 결정했다. 계약할 것처럼 하다 번복하는 게 미안해서 입이 안 떨어졌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자, 실장님과 달리 마냥 친절하던 사장님이 돌연 태도를 바꿔 짜증스럽게 그렇게 뜸 들이면 집 못 산다고 면박을 줬다.


지금이야 그 정도 거절 의사는 쉽게 밝히고 타박도 거뜬히 넘기지만 그때만 해도 부동산 매매를 처음 시도하는 입장이라 내가 뭔가 되게 잘못한 건가 싶어 주눅이 들었다. 계약금을 넣거나 구두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주뼛거리고 있는 나를 실장님이 잡아끌며 더 좋은 집을 보여주면 되지 뭘 그러냐고 두둔해 주는데 친정엄마처럼 든든했다.


실장님이 보여준 집은 앞이 탁 트여 아파트 정원이 내 집 앞마당처럼 한눈에 펼쳐지고 저 멀리 강변도 보여 리조트에 온 것처럼 근사했다. 집 내부는 바꿀 수 있어도 아파트가 위치한 자리, 층과 향은 바꿀 수 없기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실장님이 그 집과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좋은 집을 신경 써서 소개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그 집으로 이사 간 뒤에 좋은 일도 많았던 걸 보면 확실히 집도 인연인 것 같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과 사람 사이에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다. 그 역할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분이 많지만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목소리 큰 사람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거래를 부추기는 사람도 있다. 부동산 거래를 몇 번 하다 보면 좋은 부동산과 이상한 부동산을 변별하는 눈도 생기고 친한 부동산도 생긴다.


다만 친한 부동산이라고 해서 맹신은 금물이다. 가끔 부동산 말 듣고 집을 샀네, 팔았네 하며 뒤늦게 손해 본 걸 탓하는 분들이 있는데 부동산이 작정하고 속인 게 아니라면 결국 판단에 따른 책임은 본인 몫이다. 친한 부동산이기에 오히려 할 말 못 하고 넘어가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동산 거래는 평생 모은 재산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에 작은 문제라도 친분 때문에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톡 알람이 울려서 보니 좀 전에 통화한 지인이 캐나다 집 사진을 보내왔다. 현관에 드리워진 긴 데크는 영화에서 주인공들 만남이 시작되는 장소 같아 공연히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빨간 머리 앤’이 금방이라도 창가에 턱을 괴고 나타날 것 같은 아름다운 이층 집이었다.


‘와, 이 집에서 살게 되는 거야?’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간은 걱정만 했는데 이제 들뜬 마음으로 기다려 보려고요.’


하마터면 이상한 부동산에 얽혀 큰 낭패를 봤을지 모른다. 좋은 부동산 덕에 가족과 어울리는 집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하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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