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드디어 계약했어요!”
“계약?”
“네, 캐나다에 집 샀어요! 언니 덕분이에요!”
“내 덕분이라니?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아니에요! 언니만큼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 준 사람이 없어요. 부모님도 부동산에 대해 너무 아는 바가 없으시고 참 막막했거든요.”
캐나다로 이민 가는 지인이 전화를 해서는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다 끝내 울먹였다. 목이 메는 목소리를 들으니 처음에는 좀 어안이 벙벙했다. 이민 준비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많을 거란 짐작은 했는데 집 문제로 이렇게 힘들어 한 줄은 몰랐다.
“사실 한국에 있는 집 판 것도 잘한 건가, 못한 건가 계속 생각이 나서 힘들었어요. 집을 팔고 보니 전 재산을 정리한 셈인데, 전 재산을 판 돈으로 캐나다에 새로운 집을 사려니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몰라요.”
“그럼, 보통 일이 아니지. 집 사고파는 자체도 힘든데 바다 건너 타국에 집을 사야 하니.”
“언니가 중간중간 실질적인 충고도 해주고 잘했다고 격려도 해주고… 정말 고마웠어요.”
나라고 경험이 많지도 않고 부동산 중개인도 아닌데 뭘 얼마나 알았을까. 두어 달 전, 집 문제를 두고 상의하는 그녀에게 내가 한 건 이미 판 집 뒤돌아보지 않게 격려해 준 게 거의 다였다. 한국도 아닌 이국 땅에 새로운 집을 사야 하는 만큼 집중력이 필요한 시점인데 자꾸 팔아버린 집이 올랐나, 내렸나 신경 쓰다 보면 실수가 생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부동산 성화에 조금 급히 파느라 한국 집값을 충분히 받지 못 받았다는 초조함에 캐나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며 서두르더니 캐나다에 있는 한 부동산의 이상한 제안을 수락할 기색이었다. 캐나다 금융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뭔가 미심쩍은 제안이었다.
“저기 내가 캐나다 금융 시스템이나 대출 조건 등은 몰라도 이건 세계 공통의 사기라고 의심되는 정황이야. 부동산 중개업자 명의로 집을 산다니, 아무리 해외라고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남편은 사기는 아닐 거라며 믿고 사자고 그래요. 집 팔면서 제가 실수한 게 좀 있는데 이번에 집 사면서도 혹시 내 고집에 또 실수하는 건 아닐까 싶어 강하게 우기지도 못하겠어요.”
캐나다인인 그녀 남편이 현지 상황을 조금 더 알겠지만 한 번도 주택 거래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그녀보다 더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부동산 거래는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의 경험치가 완전히 다르다.
막연하게 믿고 있던 상도덕이나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 같은 게 전혀 통하지 않는 순간에 직면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란 건 잘 없고, 예상보다 어렵고 피곤한 일이 많은 게 인생이라는 걸 부동산 거래 몇 번 하다 보면 실감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혹은 잔금을 치르고 등기부등본을 손에 쥐는 순간까지 내내 멀미하는 기분으로 산다. 스위스 융프라우에 여행을 갔다가 일시적으로 온 고산병 증상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매슥거리는 기분으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참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캐나다 사정을 아는 남편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찜찜한 상태로 거래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한국 집을 팔면서 한 실수를 만회하려고 조급해진 어떤 분위기가 부부 사이에 있지 않을까 싶어. 솔직하게 이런 마음들을 다 털어놓고 상의해 봐. 부동산 거래는 조급하면 실수가 생기더라고.”
조언을 받아들인 그녀는 남편과 의논한 끝에 원점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다시 알아봤고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내 정상적인 계약을 하게 됐다. 수상한 거래를 제안했던 부동산 대신 다른 부동산을 통해 별 탈 없이 계약을 마치고 이렇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것이다. 새 집 이모저모를 설명하는 그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샀던 첫 집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