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2)

by 은수

드디어 이사하는 날. 다들 북유럽풍 인테리어를 멋지게 소화했다며 내 소원대로 ‘잡지에 나오는 집’ 같다고 칭찬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집 사진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감탄과 부러움이 이어졌다.


고대하던 집에 이사 들어간 첫날 소감은, 오래전 친구 집에 대한 내 기억이 왜곡된 건가 싶을 정도로 집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집을 사서 원 없이 꾸몄는데 그 들뜨고 설렌 기분은 석 달을 가지 못했다.




잡지에 나오는 집은 잡지에서 감상할 때 아름다운 거였나 보다. 전시품을 향한 동경과 찬탄은 그 자체로 끝날 때 의미가 있지, 전시품을 우리 집에 갖다 놓으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잡지에서 볼 때는 바다처럼 푸르고 아름다웠던 벽지였는데 내 집 벽면에 두르니 이상하게 바다가 아니라 계곡의 깊고 음울한 물에 갇힌 느낌이었다.

세련된 부엌을 만들어 준다던 포쉐린 타일 바닥은 조심성 없는 내가 그릇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잘 깨지지 않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그릇조차 자잘한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뜨렸다. 호텔 침실처럼 만들어 보겠다고 일부러 어두운 노란빛으로 고른 조명은 혼자 잘 때면 가끔 오싹한 기분을 들게 했다. 좀처럼 집에 정이 붙지 않았다.


엄마의 고단한 일상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 많은 엄마들의 눈시울을 적신 <툴리>란 영화가 있다. 주인공 마를로는 엄마 손길이 필요한 여덟 살 첫째와 단체 생활 적응이 어려운 둘째를 키우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에서 셋째까지 출산하게 된다.

매일 늦게 들어와 게임만 하는 남편 대신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다 우울증까지 온 그녀를 위해 재력가 오빠가 야간 보모 ‘툴리’를 고용해 준다. 툴리를 통해 조금씩 생기를 되찾던 그녀는 급기야 툴리와 함께 세 아이 때문에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밤 외출을 신나게 즐긴다. 모처럼 기분 좋은 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툴리가 마를로에게 건넨 말이다.


“집에 다 왔네요.

따뜻한 침대와 아기 셋이 있고,

삐걱대는 계단과,

세상에서 제일 약한 샤워기.

그게 집이죠.

집에 다 왔어요.”


영화를 보다가 집 꾸미는 데 열을 올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 필요한 건 잡지 속 집이 아니라 가족과 추억을 쌓아가는 집이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다. 크기와 인테리어만 충족시키면 집이 제 기능을 다할 거라는 믿음은 오판이었다는 것도. 오히려 평수 넓히기와 인테리어 공사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집에 볕이 잘 들지 않고 소음이 꽤 잘 들린다거나 놀이터가 멀어져 아이가 슬퍼한다는 점 등 더 중요한 문제를 모두 간과했다.




볕은 비싸게 장식한 집이라고 더 많이 들어오고 벽지가 해졌다고 덜 들어오지 않는다. 같은 위치라면 꾸민 집이나 안 꾸민 집이나 지구 자전의 원리 앞에서 평등하다. 거실 깊숙이 들어와 빨래를 바싹 말리는 햇빛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변수인지 미처 몰랐다. 인테리어는 흠잡을 데 없지만 해가 잘 들지 않는 어두운 집에 있노라면 근사하게 장식된 중세 성에 갇혀 우울하게 지내는 몰락한 귀족 같았다. 일조량이 부족한 걸 눈치챈 식물들이 먼저 시들어갔고 나는 다시 이사를 꿈꾸는 주인집 여자가 되었다.


집을 전세 놓고 신도시로 이사 오면서도 별로 아깝지 않았던 건 그런 깨달음 덕이었을 거다. 남들은 예쁘게 꾸민 집을 남에게 세 주는 것도 아깝다 했지만, 10년째 미동도 하지 않던 그 동네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고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집을 서둘러 팔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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