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1)

by 은수


신도시에 집을 사려고 기웃거리다 보니 예전에 살던 집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전세로 놓고 있는 그 집이 팔려야 새 집을 살 수 있단 생각에 빨리 처분하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 평생 살 생각으로 공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기억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들 ‘북유럽풍 카페’ 같다고 칭찬했던 집이었건만 신도시 집값의 오름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느긋하게 있는 집이란 참 무능해 보였다. 어서 팔아야 새로운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니 집 입장에선 인간의 호의란 참 부질없게 느껴졌을 거다.




둘째가 갓난쟁이였을 때 처음으로 내 집 인테리어 공사라는 걸 해 봤다. 처음인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기도 어려 경황이 없고 한정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도배, 장판, 싱크대 정도만 대충 하고 들어왔더니 낡은 몰딩은 눈에 거슬리고 아귀가 맞지 않는 창틀은 불편했다. 그런 와중에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한 집에 놀러 갔다 오면 그 집이 내 집인 양, 자꾸 눈에 아른거려 뜬금없이 이사 가고 싶은 생각에 애가 달았다.


평수가 넓은 이웃집에 갔다 온 다음엔 더했다. 학기 초에 아이 친구 엄마가 자기 집에 초대했던 적이 있다. 신학기라 아직 서로 서먹한 탓도 있었겠지만 우아한 홈드레스 차림으로 현관문을 여는 그녀 뒤에 배경처럼 자리한 집이 왠지 사람을 움츠러들게 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긴 복도 끝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걸려 있었다. 내 키보다 훌쩍 큰 액자에 담긴 황금빛 그림이 복도 끝에서 햇빛에 일렁였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어지러운 살림이 보이는 우리 집에 비하니 집이 어떤 기품마저 품고 있는 것 같아 공연히 긴장되기까지 했다. 발끝을 내려다보니 헤링본 마루였다. 월넛 색이 고급스러워 나도 모르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디뎠다. 주방 벽면에 장식된 사각형 무늬는 단정하고 우아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웨인스코팅이었다.


인테리어집1.jpg 사진출처 unsplash

클림트 그림이 걸린 집에 다녀온 그날 이후, 큰 평수로 가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때는 그 집이 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려면 한참 걸어야 했고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은 한눈에 담기지 않아 고개를 한번은 휘 돌려야 했다. 30평대도 20평대에 비하면 여유가 있었지만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온갖 짐이 늘어 아무리 정리를 해도 집이 어수선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접해 있는 이 아파트를 떠날 일도 딱히 없어 보여 이번에 큰 평수로 가면 평생 살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늦은 저녁, 아이들과 아파트 단지를 거닐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넓은 거실이 눈에 띄면 남의 집이란 것도 잊고 베란다 밖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퍽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40평대 집을 사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됐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을지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정보를 얻기 위해 온라인 인테리어 카페를 얼마나 부지런히 드나들었는지 회원 등급이 ‘여왕’을 넘어 ‘여신’이 되었다. 인테리어 여신답게 총괄 업체에 다 맡기지 않고 각각의 업체를 섭외해 내가 생각한 ‘북유럽풍 인테리어’ 콘셉트에 맞게 진행했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여러 업체의 일정과 공사 순서, 인부들 동선까지 고민하며 모든 사항을 표로 정리하고 세심히 추진하다 보니,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3주 만에 살이 쏙 빠졌다. 심지어 원목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실력 있는 목수 아저씨를 수소문 끝에 찾아 지방에서 모셔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변기는 배관이 노출되지 않는 치마형으로 꼭 설치할 겁니다.”

“원목 싱크대는 비틀어짐이나 갈라짐이 없게 여러 번 칠하는 것 잊지 말아 주세요. 아, 색깔은 제가 벤자민무어 페인트 매장 가서 직접 고를 거예요.”

“선반 노루발하고 붙박이장 손잡이는 모두 제가 도매시장에서 사 올 거예요. 일단 달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업체 사람들이 나에게 공사장 십장 같다며 우스개 소리를 할 만큼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내 집 단장에 열을 올렸다.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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