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즐겨 듣는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아저씨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곧 있으면 방탄소년단이 함께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라? 방탄소년단이 배캠에 나온다고? 그냥 차에 앉아서 듣고 싶었지만 하필 저녁때였다. 아이 저녁을 차려줘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고 싶었으나 분명히 이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한다고 분주할 거다. 아무리 방탄소년단에 뒤늦게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다 해도 엄마로서 예비 수험생 뒷바라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방 빌트인 라디오를 켰다. 거실 서재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던 아이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자기 공부하는 거 보면서 왜 라디오를 켜냐는 눈빛이었다.
“아, 지금 방탄이 나온대, 방탄! 시끄럽니?”
우리 집은 부엌과 거실이 개방된 구조니 당연히 시끄러울 텐데 뻔한 걸 묻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다. 예전에 아이가 한창 어떤 아이돌 그룹에 빠졌을 때, 어쩌다 그 그룹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나오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이가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배려해 줬다.
서울에서 하는 콘서트에 너무 가고 싶어 하기에 몇 가지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 콘서트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키느라 서울까지 가서 아이를 콘서트에 들여보낸 후, 공연장 주변에서 끝날 때까지 추위에 떨며 세 시간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아이는 여전히 그 그룹을 좋아하지만 어느새 예비 수험생 위치가 되고 보니 예전만큼 열성적이지 않다. 꽤 앞서가는 엄마처럼 그간 아이의 가수 사랑을 응원해 줬으니 이번에는 거꾸로 내가 방탄소년단에 빠지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고 어쩌면 ‘우리 엄마 젊게 산다’며 좋아할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는 화난 얼굴로 책을 차곡차곡 챙기더니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들어갔다. 라디오에서 방탄소년단이 배철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해준 배려는 다 잊어버린 건가 서운했다. 연예인 좋아하는 아이에게 엄마들이 으레 하는 잔소리도 안 했고 남다른 가수 사랑을 두고 남편과 아이가 부딪힐 때면 기꺼이 아이 편에서 남편을 설득했다. 아이의 팬심을 지지해 주느라 내가 해 온 물리적 고생이나 정신적 수고를 기억도 못하는 걸까?
처음에 내가 방탄소년단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아이가 방탄소년단이 영어로 된 노래를 냈다며 들어보라고 했다. 아이는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니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이런저런 노래를 챙겨 듣고 가끔 나에게 새로운 곡이나 가수를 소개해 왔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를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귀에 자꾸 멜로디가 맴돌았다. 도대체 어떤 그룹인지 슬며시 궁금한 마음이 들어 난생처음 유튜브에 콘서트를 검색해 봤다.
사진출처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본 순간 어떤 애들이기에 이렇게 온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춤을 추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한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나하나 검색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건 춤이나 퍼포먼스뿐 아니라 노래 가사였다.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기를’이라니. 대중가요에 이런 가사가 있었던가? 가사를 일일이 찾아서 확인할수록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한 <피 땀 눈물>을 비롯해 5.18 민주화 운동을 언급한 노래까지, 그간 발표한 노래는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었다.
‘자본은 꿈을 담보로 희망이라는 모르핀을 주입해, 부는 부를 창궐하고 탐을 시험’한다는 <이상하지 않은가>와 같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도 있었고, ‘최고’가 아니라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던 진심을 노래한 <매직샵>처럼 사람을 향한 깊은 성찰과 애정을 담은 노래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저 노래 부르는 인형이 되지 않기 위해 작사, 작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대목에서 가수들 개개인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어느 교수의 표현대로 ‘공장형 아이돌’이 아니었다. 밤늦게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한곡 한곡 가사를 음미하며 들을수록 노래에 담긴 진심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수시로 듣게 되었고 가족들하고 있을 때도 방탄소년단에 대해 혼자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아이는 영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슈가’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아, 민윤기?’하고 알은체를 하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엄마가 슈가가 민윤기인 걸 알아? 와, 엄마는 데뷔한 지 몇 년 된 가수나 그룹들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내가 아무리 알려줘도 맨날 잊어버리던데! 가수 본명까지 안단 말이야? 노래가 좋은 거라면서 멤버들 신상을 어찌 그리 자세히 알아?”
“아니, 왜 화를 내? 내가 아는 게 뭐 이상한 건 아니잖아?”
“화내는 건 아닌데 엄마 이상한 건 맞아. 엄마가 연예인 아는 건 공유 말고 처음 봤거든.”
“엄마도 연예인 관심 가질 수도 있지 뭐. 그렇다고 내가 10대 청소년들이 가수 좋아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좋아하겠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거의 아들뻘 애들인데? 기특하고 대견하달까, 그런 거지. 정국이 아버지 나이가 너희 아빠 나이랑 거의 같잖아.”
“으아, 미치겠다. 엄마가 정국이를 알고 심지어 아버지 나이까지 안단 말이야? 엄마 거의 아미잖아?!”
“아미는 아니야. 아미 카페에 가입도 안 했다고.”
“엄마, 카페에 가입해야 아미인 건 아니야. 지금 엄마처럼 가수들 신상에 대해 훤히 알고 있고 맨날 그 가수 얘기만 하고, 그 가수 노래만 듣는 게 ‘덕질’하는 거야.”
아이의 목소리 톤이 높아질수록 이상하게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변명이든, 해명이든 하려고 애쓰다 대중문화에 대한 소견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너희들 말로 ‘덕질’한다 해도 잘못하는 건 아니지 않니? 엄마는 대중문화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이야. 따지고 보면 우리가 지금 고상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도 당시에는 격 떨어지는 대중문화로 취급된 게 많았거든? 소설이니 판소리니 사실 다 세속적인 잡설 취급됐었지. 클래식이라고 고귀한 거였을까? 왕과 귀족이 즐겨 들었다고 해서 과연 고결한 문화였을까?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 엄마는 요즘 대중가요 듣거나 가수 좋아하는 거 나쁘다고 생각 안 해.”
어째 대화를 이어갈수록 아이랑 엄마 역할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럴듯한 말로 그간의 내 ‘덕질’을 옹호하고 있었지만 말하면서도 왠지 옹색한 변명 같다. 아이는 말없이 듣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변명 같다고 느낀 건 사실 내가 대중문화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나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것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는 했어도 결코 마음 깊이 지지한 건 아니었다. 호흡이 짧고 반응이 즉각적인 노래만 찾아 듣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청소년들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은 그저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상이자 롤 모델로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 딴에는 너그럽게 ‘봐준’ 거였다.
이런 내 생각이 바뀐 건 차 안의 작은 콘서트 덕분이었다. 지루한 코로나 때문에 단 하나 좋은 게 있다면 공장 가동이 줄고 산업 활동도 정체되면서 하늘이 투명하게 맑아진 것이다.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방탄소년단을 향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던 어느 날이었을 거다.
‘방탄소년단 노래 모음’을 검색해 블루투스로 연결해 틀어놓고 운전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좋아하는 가사와 선율로 내 차에서 불러주는 수많은 노래들.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차 안이 그대로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자연스레 무대 배경이 되었다. 나만을 위한 작은 콘서트였다.
‘아! 참 행복하구나!’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 클래식>을 쓴 문학수 기자는 ‘감동으로 밀려온 곡이 있다면 그때가 음악과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이며 음악을 향해 가슴을 열고 다가간 사람만이 이런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채화 같이 푸른색으로 꽉 찬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음악을 품고 움직인 내 작은 차. 그 안에서 나는 단 한 명의 관객이자 주인공이었다.
아이에게 그 순간의 벅찬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가 조용히 나와서 마주 앉았다. 아까보다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엄마, 내가 속 좁게 굴었으면 미안해.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고. 내 친구가 연예인 좋아하는 거는 괜찮은데, 그런 건 아무 상관없는데, 왠지 엄마가 그러는 건 낯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 엄마는 스스럼없이 나랑 장난도 잘 치고 친구 같아서 좋아.
그런데 난 엄마가 이렇게 많은 책들을 집에 들여놓고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어딘지 나랑은 다른 것 같은 그런 모습도 좋거든. 약간은 롤 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엄마 보면서 나도 책도 많이 읽고 지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도 하고. 엄마는 드라마 같은 것도 잘 안 보고 어려운 책 열심히 읽고 그러잖아. 그런데 갑자기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내가 좀 당황했나 봐. 나도 고정관념 갖지 않고 엄마가 보이는 변화에 마음을 넓게 가지려고 노력할게.”
나에게 ‘너그러워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퍽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아이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은연중에 느꼈을 거다. 엄마가 대중문화에 대해 그다지 열려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중문화를 약간은 하대하는 마음으로 대해 왔다는 걸.
그런 엄마가 느닷없이 자긴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며 자신이 청소년들하고 똑같은 ‘덕질’을 하는 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모순돼 보였을 텐데 아이는 외려 자신의 속 좁음을 반성하고 있었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스러운 면모도 보이고, 친구 같은 엄마도 좋지만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 머물기’를 바라는 아이다운 마음도 엿보인다.
방탄소년단이 나에게 준 영감을 말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일단은 방탄소년단을 매개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로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게 중요할 듯하다. 부족한 엄마는 아이 덕분에 방탄소년단이란 새로운 세계도 알게 되고 또 한 뼘 성장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