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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인과 친해지려고 애쓸 필요 없는 이유

by 은수
나도 좋아하는 친구 생일에 초대받고 싶다.
불공평한 세상이다.
어째서 어떤 애들은 생일마다 초대받고,
어떤 애는 그렇지 못할까.

<마당을 나온 암탉> 저자로 널리 알려진 황선미 작가. 그녀가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시무룩한 자신의 아이를 보며 지은 동화책 <초대받은 아이들>의 한 장면이다. 친구들에게 늘 인기 많은 친구, ‘성모’의 생일에 초대받고 싶어서 내내 마음을 졸였던 주인공 ‘민서’가 결국 초대장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성모를 둘러싸고 몰려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는 민서의 시선이 어째 낯설지 않다.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대목이 아닐까.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항상 반에는 ‘인기인’이 있었다. 그들은 남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별달리 애쓰지 않는데도 대중의 주목을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재치와 유머가 있거나 똑똑하고 영리해서, 혹은 화려하고 언변이 좋아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하고 친하고 싶어서 주위를 맴도는 친구들이 많다는 건 공통점이었다. 개중에는 그런 성격적인 매력에 더해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외모까지 출중해 어린 마음에도 ‘다 가진 아이’로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인기인 주위를 맴도는 이들이 있다. 인기인하고 맺은 끈끈한 친분을 과시하거나 인기인과 어울리면 자신도 덩달아 빛나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때는 나도 그렇게 기웃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에서든, 직장에서든, 화려해 보이는 사람이 나를 기꺼이 옆자리에 앉혀주면 고맙고 기뻤다.


기대와 달리 내 인생에서 인기인들은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차피 그들에게 심오한 인생의 자세를 배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잘 모르는 화려한 세계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고 학업이나 취업 등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거라 기대한 속물같은 바람도 있었다.


사진출처 unsplash

그러나 인기인들은 대부분 바빴고 나 아니더라도 주변에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어떤 호의를 베풀어도 그다지 고마운 줄 몰랐다. ‘인맥 관리’라는 말도 있을 만큼 요즘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걸 중요시 여기는 것 같은데 내 경험상, 기회가 ‘사람’한테서 오는 건 맞지만 ‘인기인’한테서는 오지 않았다.


학업이나 취업, 결혼, 사업 등 생애사적 전환점에서 우리가 도움이나 조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내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은 인기인이 아니었다. 내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거나 우울할 때도 그들은 자기를 불러주는 파티에 가기 바빴고, 그래서 통화 한번 하기도 힘들었다.




<초대받은 아이들>이 어른에게도 재미있는 건 인기인 ‘성모’란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그린 덕분이기도 하다. 성모는 인기 많은 모범생이지만 딱히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서가 오직 성모를 위해 준비한 ‘그림 공책’을 아이들에게 무심히 줘서 결국 찢어지게 만든다. 인기인답게 흥겨운 파티에 취해 너무 바빴고, 챙겨주는 친구도 많다 보니 민서가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그린 그림 공책 따위는 가볍게 취급한 것이다.


성모의 모습에 실망한 민서는 아까부터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다른 친구 ‘기영이’가 눈에 들어온다. 성모와 달리 ‘소중한 너의 그림 공책이 찢어져 너무 아깝다’고 말하는 기영이와는 어쩐지 잘 맞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을 느끼며 동화는 끝이 난다.


돌이켜보면 인기인 주변을 맴도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극적으로 무슨 자신감을 회복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인기인을 덮어놓고 선망하거나 동경하지는 않는다. 인기인과 맺는 얄팍한 친분보다는 나의 진심에 맞닿는 소수와 깊이 있게 사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고. 동화 속 민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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