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서 지키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자존심인가 아니면 정치인의 지지율인가
우연히 보게 된 도쿄에 위치한 고래고기 음식점 리뷰. 신선도에 있어서 일본 고래고기는 차원이 다르다는 리뷰였다. 현재 국내의 합법적인 고래고기 입수 경로는 사고사 한 고래를 발견한 경우뿐. 따라서 울산에서조차 고래고기를 회로 먹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이누이트족이 북극고래를 해체해서 맛있게 먹는 다큐였다. 그 또한 인상적이었기에 무슨 맛일까? 궁금해졌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고래고기에는 논란이 있다고 했던 것이 얼핏 기억났다. '국내의 합법적인 고래고기 입수 경로는 사고사 한 고래를 발견한 경우뿐'이라는 것에도 이미 답이 있었다.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The Cove)는 2009년 10월 29일에 개봉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돌고래 잡이를 다룬다. 제82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먹더라도 알고 먹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게 된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太地) 마을의 돌고래 잡이 장면을 최초로 촬영하여 세상에 고발한 다큐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상상치도 못할 끔찍한 참상을 알게 된다.
'피바다'가 문학적 표현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타이지 마을에서는 실존하고 있었던 것. 문자 그대로의 피바다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돌고래는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다. 지능을 넘어 지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 제외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 돌고래를, 어떻게 수십, 수백 마리의 다른 돌고래가 지켜보는 앞에서 참혹하게 죽일 수 있을까. 한 번에 숨통을 끊어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이고 무참히 찔러 죽일 수 있을까. 결코 고래, 돌고래만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소, 돼지도 이런 식으로 학살하듯 도살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세대에 걸쳐 기억을 전승시킬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돌고래를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게다가 애당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돌고래 고기의 수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친근하고 귀여운 인간의 친구. 돌고래의 이미지상 돌고래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과연 수요가 있을까?
식재료로써의 수요는 크게 상관이 없다. 돌고래 잡이의 1차적 수입원은 수족관에 공급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 죽이기 전, 예쁜 돌고래는 선별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선별한 돌고래는 살아있는 채로 전 세계 수족관에 공급된다. 국내에서는 2023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고래류를 전시를 위해 새로 반입하는 행위가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또한 개정 전까지는 대부분의 돌고래를 타이지 마을에서 수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식재료로써의 돌고래 소비도 늘리고 싶을 것이다. 무산됐지만 초등학교에 돌고래고기를 무상공급하려던 시도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돌고래고기를 대체 누가 먹고 싶어 할까. 혹시 고래 고기로 둔갑해 팔리고 있진 않을까. 과연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고래고기에 이 돌고래고기가 섞여 들어가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찾아보니 쿠지라스토어라는 무인 가게가 있다. 쿠지라(くじら)는 일본어로 고래라는 뜻. 이 가게에 고래고기 자판기가 있다고 하여 직접 찾았다.
검색하면 나오는 네 곳의 쿠지라스토어 중 한 곳을 찾았다. 흰 벽의 깔끔한 외관. 들어가려는데 오른쪽 벽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먹어서 지킨다, 바다의 미래>라고 적혀 있었다. 고래고기를 먹어서 바다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후쿠시마 농산물 및 오염수 등등이 연상된다.
한편, 돌고래는 상업적 포경의 대상조차도 아니기 때문에 포경 금지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고래는 국제포경위원회(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IWC)에 의해 포경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은 IWC를 2019년에 탈퇴한다. 과연 일본이 IWC를 탈퇴해서까지 고래잡이를 지속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고래를 먹어서 지키겠다는 것은 무엇일까. 식량안보와 전통 식문화 계승?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이것은 고래가 인간이 먹을 물고기까지 다 먹어치우니까 고래를 없애 식량안보를 확보하겠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미래에 먹을 식량이 다 떨어졌을 때 고래라도 먹는 것으로 식량안보를 확보하겠다는 의미인가? 둘 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고래의 개체수는 논할 것도 없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른 여러 방법 중에 굳이, 고래를 통해 식량안보를 달성할 이유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 고래고기가 주식이고 고래고기를 먹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할까. '국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주적인 일본'이 되고 싶은 걸까. 백인이라면 그저 껌뻑 죽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사사건건 개입해 오는 서구 사회에의 케케묵은 반감, 그 민낯일까. 아니면 포경산업이 주 경제활동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지역구 신경 쓰기?
그러나 일본 내 고래고기 소비량은 극명하게 줄고 있다. 그런데 소비량이 줄면 포경산업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국가적 자존심과 지지율을 위해 중요한 포경산업에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고래고기를 소비시키고 앞으로도 포경산업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고래고기 자판기도 소비량을 늘리려는 일환으로 보였다. 쿠지라스토어 요코하마점에는 총 네 대의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통조림 전용 한 대, 냉동식품 전용으로 두 대. 그리고 나머지 한 대는 고래로 만든 화장품을 파는 자판기다.
처음 본 화장품 자판기. 그것도 고래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이다. 각각 9900엔인 세럼과 펄 크림(사진 중앙과 오른쪽)이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브랜드 제품도 아닌데 10만 원에 육박하는 화장품이 자판기를 통해 팔리고 있다. 일본 포경 비판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말한다. 문화의 상대성을 무시한 고유 식문화에의 침해라고. 하지만 고래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을 브랜딩, 판매하는 것과 문화의 상대성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또한 고래류 중 일부는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이빨고래에 국한된 문제이고 수염고래는 중금속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한다. 따라서 진짜 고래고기를 먹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꿔서 말하면 이빨고래의 경우(돌고래는 이빨고래에 속한다) 문제가 된다는 얘기가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유통되는 고래고기에 어떤 고래가 섞여 들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음날 저녁, 도쿄 시내에 위치한 한 고래고기 전문점을 찾았다. 그런데 실은 고래고기를 먹어본 것이 엄밀히 말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산 출신.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가 사 온 고래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너무 어릴 때라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한 번 더 부산 소재 일식집에서 츠키다시로 나온 고래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너무 얇게 썰려 있어 무슨 맛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꼭 무슨 맛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것은 고래 회와 고래 베이컨, 식사 세트. 평범해 보이는 미소 된장국에도 실은 고래고기가 들어가 있다.
우선 고래 베이컨을 한 점 맛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맛. 묘사를 하고 싶지만 도통 표현할 길이 없어 헛구역질을 하며 한 점 더 먹었다. 첫맛은 비교적 온건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강렬한 향과 맛이 올라온다. 살면서 평생 맛본 적 없는 맛. 기름 쩐내. 그런데 문제는 그 기름이 돼지기름, 소기름과 같은 일반적인 기름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생선 비린내와도 다르다. 고래고기에서는 석유에 절은 플랑크톤 맛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고래회가 베이컨보다는 나았다. 몰캉한 생간 같은 식감. 처음에는 강렬한 철분 맛, 즉 피맛이 주를 이루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위의 베이컨처럼 결국 플랑크톤 석유 맛으로 변한다. 와사비나 겨자로 어떻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베이컨도 그렇지만 회 또한 첫맛보다는 끝맛에서 절대 나선 안 되는 맛이 났다. 입가심을 해보려 미소된장국을 조금 들이켜보았다. 실패였다. 기름 쩐내에 있어서는 미소된장국에 들어있던 잘게 썬 고래고기가 최고였던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본 신선한 고래고기는 맛이 없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예 먹을 수 없었다. 생각한 대로였다. 고래고기는 어릴 때부터 먹으면서 자란 게 아닌 이상 맛있다고 생각하기 힘든 고기인 것. 몇 번 먹어본다고 해서 갑자기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역사적으로 고래고기가 맛없다는 얘기는 계속해서 있어왔지만 꼭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에 굳이, 굳이 고래를 먹어야 할 이유를 필자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고래고기에 찬성하는 이들의 식탁에는 과연 얼마나 자주 고래고기가 오르는지를. 무엇을 먹어서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정말로 바다의 미래일까. 아니면 일본의 자존심, 정치인들의 지지율, 포경산업 이해관계자일까. 여전히 그 기묘한 맛이 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상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