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의 저택 어쩌다 레스토랑이 되었나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에서의 런치

by 괴강

이왕가의 집(旧李王家東京邸).. 도쿄도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만 프렌치 레스토랑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외관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Restaurant La Maison Kioi)
주소: 〒102-0094 Tokyo, Chiyoda City, Kioicho, 12 東京ガーデンテラス 紀尾井町内
홈페이지: akasakaprince.com

외국에 남아있는 국가적 중요 건물이 있다. 바로 도쿄에 위치한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이 건물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동생이 거주했던 저택이기 때문. 즉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저택이 완공된 1930년부터 1952년까지 대략 이십여 년 간 거주했던 곳이다. 어느 평일 낮,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1층에 위치한 프렌치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를 찾았다.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뒤로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가 보인다

영친왕.. 대한제국이 쇠퇴하던 시절 황태자로 봉해져 파란만장한 삶 살아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은 고종이 퇴위한 뒤, 불과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보내져 철저한 감시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일본 왕족 출신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이방자)와 정략결혼을 맺게 된다. 일제는 조선 황실을 일본 체제에 종속시키기 위해 ‘왕공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이 씨 왕조를 일본 황족보다는 낮고 공족(귀족)보다는 높은 위치에 두었고 영친왕 또한 여기에 편입되었다. 겉으로는 이왕직(李王職)을 통해 황실 재산의 관리가 보장되었기에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의 존속 아래에서만 가능했던 조건부 안락. 일본이 패망하자 왕공족 제도와 이왕직은 함께 폐지되었고, 영친왕은 평민으로 전락하는 동시에 과중한 세금 부담까지 지게 되었다. 더욱이 한일 양국으로부터 외면당한 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끝내 본 저택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혜옹주는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기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영화 <덕혜옹주>에도 영친왕 저택이 등장한다.

동생 덕혜옹주 조현병으로 정신병원 입원.. 영친왕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치료비 지원해


게다가 동생 덕혜옹주는 대마도 번주 가문 출신 소 다케유키와 혼인했으나 조현병을 앓으며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특히 1955년 이혼 이후부터는 영친왕이 덕혜옹주의 치료비를 부담했는데, 이 시기는 이미 저택을 세이부(西武) 철도에 4천만 엔에 매각한 뒤다.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입구. ‘구관’이라 적혀있다.

영친왕저택.. 1955년부터 호텔로 개조된 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영친왕 저택은 주인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그대로 비추듯, 기구한 운명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우선 1954년 세이부(西武) 철도에 매각된 뒤, 이듬해인 1955년부터 객실 31개실의 호텔로 개조되어 손님을 맞이했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1965년에 촬영된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가든파티가 한창이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은 정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종종 언급될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된다. 1983년에는 40층 규모의 신관이 추가로 건설되며 규모 확대. 이후 영친왕 저택은 구관으로서 예식장, 레스토랑, 바 등으로 활용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인기는 점차 식어 갔다. 그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피난시설로 쓰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같은 해 폐장. 이후 2016년에는 복합 시설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모습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영친왕 저택은 원래 있던 위치에서 무려 44미터 이동하게 된다.


영친왕 저택이 원래 위치했던 곳에 남아있는 일부 벽돌들

초고층 빌딩 2동 신축 공사 중 부지 내 보존 대상인 영친왕 저택을 통째로 이동.. 1단계에서 남동쪽으로 44미터 이동 후 임시 배치, 2단계에서 거의 원래 위치로 복귀


영친왕 건물을 이동시켰다가 다시 복귀시킨 이유는 오피스·호텔 동의 주차장과 버스·택시 승강장 등의 기반 시설을 지하에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기반 시설을 지하에 매설해, 지상부는 녹지화할 계획이었던 것. 해당 공사는 1단계, 2단계의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었고 그 과정에서 영친왕 저택은 건물 통째로 이동하게 된다.


바닥 아래에서는 작업자들이 건물을 지지하는 봉을 교체하거나 미세조정하고 있다.(사진: 니케이 아키텍처, 이하 동일)
영친왕 저택은 사진 앞쪽에서 뒤쪽으로 이동. 건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는 절단된 기둥 등이 남아 있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NASFK2200H_S3A121C1000000/

2011년 도쿄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그러나 일본 황실 저택으로써 조명할 뿐


신관은 철거되었다. 하지만 구관인 영친왕 저택을 통째로 이동시켜 가면서까지 보존한 이유는 일본에서도 황실 건축물로써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 영친왕 저택은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 폐장된 2011년에 도쿄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사 당시 한 관계자는 “구 황족 건축으로서 당시의 흔적을 남기면서, 생명 있는 문화재로서 보존하고자 한다”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일본은 이 건물을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의 거처라기보다, 근대 황실 건축이 지닌 미적 가치와 기술적 성취의 산물로 인식하며 보존해 오고 있다.


이왕가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영친왕 저택이 도쿄 23구 중 하나인 치요다구의 문화재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다. 이용자 외에는 견학할 수 없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https://www.edo-chiyoda.jp/bunkazaihogonotorikumi/bunkazaihogochosain/hogocho2019/1/372.html

특히 위의 치요다구 문화재 사이트에 실려있는, "또한 건설 당시부터 놓여 있던 대·소형 탁자에는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 꼼꼼히 마감 처리가 되어 있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일본식 장인정신이 잘 드러난다."라는 부분에서도 그러한 견해가 잘 드러난다.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 내부
■ 라 메종 코스
【평일】4,500엔
【토·일·공휴일】5,500엔
※ 모두 세금 포함, 서비스료 10% 별도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 하우스 내 시설을 이용하지 않으면 견학조차 할 수 없는 문화재. 미리 코스 요리 중 가장 저렴한 라 메종 코스를 예약해 두었다. 자리에 안내받기 전까지 기다리며 일본식 장인정신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 내부

교묘하게 선택된 “한일병합”이란 용어.. 이중성과 교활함은 일본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인가


그러나 역시 언짢다. 우리 문화를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했던 일본. 이 저택이 있던 자리에 에도 시대에는 기슈 도쿠가와 가문의 다이묘 저택이 있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기타시라카와노미야 가문의 황족 궁정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한일병합 시기에 설립된 이왕가의 도쿄 저택"이라는 간략한 설명으로 이번에도 어김없이 어물쩍 넘어간다. 한일병합이라는 단어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를 멸망시켜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던 일본이 우리와 일본이 대등하지 않음을 공고히 밝힘과 동시에 조약의 강제성을 숨기기 위해 선택한 용어가 "병합"아닌가. 치요다구 문화재 사이트에 버젓이 적혀있는 '韓国併合(한일병합)'이라는 단어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 내부

https://www.yna.co.kr/view/AKR20220508022500005

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4/12/14/AP436NYCZRANZDQLSYWETKP4PE/

영친왕 저택 포함한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의 가치는.. 최근 약 3조 7300억 원에 블랙스톤에 인수되어


사실 본 저택에의 환수운동이 없지는 않았다. 대한황실문화원에서는 영친왕 부부가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과 소통한 상징적인 장소라며 환수운동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한편 현재 영친왕 저택의 소유주는 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 2024년 12월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세이부홀딩스로부터 26억 달러(약 3조 730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대한황실문화원에서는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대한제국 투구와 갑옷 환수를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마찬가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필요성을 환기하여야 한다.


레스토랑 라 메종 키오이 메뉴판
【아뮤즈】버섯 브리오슈 토스트
【차가운 전채】료마 가쓰오 · 아카쿠루리 무 · 그리비슈 소스
【따뜻한 전채】어니언 그라탱 수프
【메인】 (택 1)
삼치 포와레 · 노헤지 순무 · 그르노블 소스
요네자와 돼지고기 로스트 · 버섯 · 마르살라 소스
군마현 아카기 와규 로스트 · 베니하루카 고구마 · 녹미 (+1,800엔)
【디저트】 (택 1)
국산 일본밤 몽블랑
미야자키 망고와 코코넛 판나코타
바스크 치즈케이크
후지 & 코우교쿠 사과 애플파이 (+500엔)
커피 또는 홍차

자리에 안내받고 메인으로 삼치 포와레・노헤지 순무・그르노블 소스를, 디저트로는 미야자키 망고와 코코넛 판나코타를 선택 후 기다렸다.


메인 메뉴인 삼치 포와레・노헤지 순무・그르노블 소스.
미야자키 망고와 코코넛 판나코타

맛있었던 건 차가운 전채. 겉면을 살짝 익힌 가츠오와 그리 비슈 소스가 제법 잘 어울려 입맛이 돋았다. 메인 메뉴에 가니쉬로 곁들여진 순무 또한 삼치와는 정반대 되는 아삭한 식감이라 그 대비가 좋았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제일 맛있던 건 디저트로 바스크 치즈케이크와 애플파이 등도 유명한 듯하다. 그러나 역시 장소가 장소인지라 마냥 기분 좋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피와 홍차 중에서는 커피를 골랐다.

영친왕 저택 등을 포함한 여러 문제들.. 이미 지나간 과거 아냐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인데 굳이 반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반일이 아니다.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대한민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반대로 젊은 세대의 경우 놀라울 만큼 대한민국'과'의 역사에 무지하다),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시키는 대로 그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이중성과 교활함에 수차례 당해왔음에도, 마치 처음인 듯 순진하게 일본이라는 나라를 직시하지 못하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모든 일본인 개개인이 교활하고 이중적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다만 그들에게는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또한 일본과 관련된 많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청산되지 않았다.


경복궁 관월당 건물.. 고토쿠인 주지의 결단으로 100년 만에 귀환


예컨대 경복궁 관월당(観月堂)은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올해 비로소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슬램덩크의 배경지라며 가마쿠라를 여행하면서, 가마쿠라 시대 사찰인 고토쿠인(高徳院)에 들러 대불을 보곤 하지만, 그곳에 우리의 관월당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관월당은 무려 조선 왕실의 사당. 빚을 갚지 못해 왕실의 사당이 조선식산은행에 담보로 잡혔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복궁 관월당이 100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고토쿠인 주지의 결단과, 무엇보다 그 필요성을 끊임없이 환기해온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일본을 알아야 하고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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