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랑하늘 Jun 30. 2023

나는 ADHD 남편과 살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과 처음 둘이서 만나 길게 시간을 보낸 날, 나는 남편이 남들과는 많이 다른 말과 행동 특성을 지녔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그리고 계속 만나면서 사회성이 낮아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로 다음의 모습들 때문이었다.


남편은 말이 무척 많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남편은 모든 행동이 급하고, 급한 일도 없는데 자주 뛰었다. 또, 몸을 가만히 두는 게 힘든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도 몸을 자주 꼼지락댔다.
남편은 본인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대화가 가능하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도 많았지만(뭔가를 보면서 말하는 듯이 학문적/이론적인 내용을 진짜 유창하게 설명했음), 그 외의 주제에서는 이야기를 얼마 이어가지 못하고(타인의 관심사에는 전혀 집중을 못 함) 금세 본인의 관심사로 돌아와 그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하고 싶어 했다.
남편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대화에서 눈치 있는 반응을 하지 않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누군가 요즘 경기가 너무 나빠져 돈 벌기가 어렵다 하소연하면 '맞아. 요즘 너무 힘들지.'라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 단군 이래 돈 벌기가 가장 쉬운 시대인데~'라고 시작해 현재의 경제 상황과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절레절레)



하지만 나와는 깊이 있는 대화가 잘 통했고, 연인 간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았고, 자주 보이는 언행일치의 모습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갔다.






사귄 지 1년쯤 되었을까? 남편의 과거 학업 생활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남들처럼 공부에 집중하고, 행동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다음은 남편이 말해준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남편은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게 어려웠고, 공부를 해도 시험 성적이 낮았다고 했다.
남편은 영상을 볼 때 2배속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정상 속도로 보면 너무 느리게 느껴지고, 그러면 지루해서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가만히 있는 게 너무 어렵고, 무언가 자극이 계속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초등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냥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
남편은 친구를 사귀는 게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나를 만나고 있던 그때과거보단 낫지만 여전히 힘들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 비슷한 시기에 상담을 받고 있던 정신과에서 '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남편은 처방받은 약을 먹기 시작한 후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고, 과거에 ADHD 증상으로 인해 겪었던 어려웠던 일들을 떠올리며 억울하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진짜 많이 속상했다.


   

요즘 ADHD는 보통 아동기에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남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해서 남들보다 몇 배로 고생스럽게 살아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 나는 특수교육 전문가라면서 왜 정작 남편에게는 그런 의심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 - 아마 앞전에 적은 대로 ADHD를 포함해 어릴 때 증상이 나타나는 장애들은 보통 아동기에 진단받기에 남편의 남다른 특성을 알았으면서도 장애로까진 생각하지 않았고(사실 ADHD보다 아스퍼거 장애에 가깝다고 느꼈고), 만날수록 더욱 친밀해지고 익숙한 관계가 되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다. - 만약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내가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만큼 더 빨리 불편함이 줄어들었을까? 마음이 아팠고, 그리고 슬펐다.

   





연애할 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산만함 때문에 힘들 때가 있긴 하다. 나의 조울증이 그렇듯, 남편의 ADHD도 약을 먹는다고 100%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최대한 충동성을 조절하려 하고,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남편이 ADHD로 인해 과거보다 힘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ADHD라는 걸 안 다음부터, 내가 ADHD 아동들과 지낸 경험이 많고, 그에 대한 지식도 많다는 게 다행이라 여겨졌다. 나에게 남편이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되는 만큼, 남편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 보태고 덜어내며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다.






[성인 ADHD 자가 보고 척도(ASRS)] (4가지 이상이면 추가 검사 필요)


지난 6개월 동안,


1. 어떤 일의 어려운 부분은 끝내놓고,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곤란을 겪은 일이 있다.

2. 체계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3. 약속이나 패야 할 일을 잊어버려서 곤란을 겪은 일이 있다.

4. 골치 아픈 일은 피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다.

5. 오래 앉아 있을 때,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발을 꼼지락거리는 경우가 있다.

6.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과도하게 혹은 멈출 수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 공감, 댓글, 구독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나더라고요. 모두 감사합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