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냄새

by 일본기업영업맨

세탁기를 돌리 땐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고 통에 빨래랑 세제를 같이 넣어 돌려버린다. 수건 빨래엔 섬유유연제가 좋지 않다고 들어 섬유유연제를 안 써 버릇하게 됐고, 세제 통로(?)에 세제가 남아 잘 오염된다고 들어 빨래에 직접 넣게 됐다. 그래서 내 빨래는 뽀송뽀송 몽글몽글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거나 하진 않는다. 빨래한 날에 세제 냄새가 조금 풍기는 정도다.


얼마 전에 가족행사로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다녀온다고 출국 이틀 쯤 전에 분주하게 세탁기를 돌렸다. 한국에 들고갈 양말이며 속옷이며 챙겨야 했던 것도 있었고, 일본에 돌아와서 바로 세탁기를 돌릴 기력이 없을 게 뻔했기 때문에 '세탁된' 상태를 최대한 풀충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번 귀국하면서, 승무원만큼은 아니지만 짐싸는 데에 능해진 나는 세탁이 다 된 것들을 늘 사용하는 파우치에 정리해 넣었다.


한국 집에서 캐리어를 펼치고, 짐을 찾는 부산스러움 없이 필요한 걸 슥슥 꺼냈다.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아주 온화한 기온이 되지 않는 이상, '진짜 최종'까지 히트텍을 고수하는 편인데, 파우치에서 히트텍을 꺼내는 순간 일본인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왔다. 세제를 많이 쓰지 않아 내 빨래에선 아무 냄새가 안 난다고 지내와서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냄새. 그리고 나에게서 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본인 냄새. 본가의 내 방 냄새와의 대비로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일본의 세탁세제 향기와 일본의 물냄새가 옷에 밴 것일 것인데, 나의 냄새는 일본인 냄새가 되었구나 싶어 놀랐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 적잖이 충격이었다.


한번씩 어떤 화장실에 가거나 어떤 건물에 들어서면 일본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청소 세제의 냄새인지, 일본 배수 냄새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맡아보지 못하는 냄새가 편도체를 자극하여 일본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때가 있다. 좀 오래된 방송에서 2NE1의 박봄이 마트에 갔는데 미국 냄새가 난다고 한 적이 있다. 친구집마다의 특유의 냄새처럼, 그 나라에서 곧잘 맡게 되는 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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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는 다송이가 기택의 가족들의 냄새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반지하의 냄새가 가족 모두에게 배어있었다. 기택은 의식하지 못했던 본인의 냄새가 타인에게는 본인의 신분을 숨길 새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되며 상당한 불쾌감에 빠진다.


냄새. 나에게 스며들어 있는, 나를 둘러싼 환경의 분자들의 집합.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냄새를 고르기 위해 나의 옷차림과 나의 이미지에 맞는 향수를 골라 뿌리기도 하는데, 나의 옷가지들에서 일본인과 스쳐지날 때 나는 냄새가 난다는 것은 반갑지 않았다. 일본에 잘 적응하고 녹아드려했던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일본인과 같은 냄새를 가지게 되었다는 게 기쁘지 않았다. 과한 의미부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한국 세제를 쓰라고 할 수도 있고, 혹자는 일본 섬유유연제 향기가 좋아서 일부러 여행 때마다 사온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녹아들면 들수록, 일본화化가 되면 될수록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에서 살기로 했지만, 일본인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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