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례식은 고요하다

by 일본기업영업맨

올해 들어간 회사에서 12월에 전근을 왔다. 갑자기 좌천되거나 한 건 아니고, 이동처와 시기까지 이미 정해진 발령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이사 준비도 오랫동안 하고 이동해온 곳은 사람 때문에 힘들 건 없을 만한 곳이었다. 뭐든지 괜찮다고 하는 과장님(그래서 좀 의심스럽지만), 뭐든 물어보라고 하는 사원들, 평소엔 별로 관심없는 듯하다가도 필요할 땐 나서주는 부장님. 드센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가족같은(positive) 분위기다.


이 사무실 건물에는 자회사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연봉, 복지 등 소위 말하는 레벨이 다르지만, 모회사인 우리가 무시하는 건 일절 없다. 회의부터 다른 이벤트까지 웬만하면 같이 하는데, 내 환영회이자 송년회도 두 회사가 함께 했다.


송년회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때, 자회사 부장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키가 190이 넘는 거구라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대꾸를 했다. 이 부장님은 한국요리를 매우 좋아한다며 한국음식점에 같이 안 가겠냐고 물어보셨다. 그래, 이런 것이 사회생활이지, 하고 생각한 나는 너무 좋다며, 꼭 가자고 했다. 그렇게 바로 다음주에 같이 가기로 했다.


한국음식점에는 부장님과 나, 송년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자회사의 젊은 여직원 셋이 가게 되었다. 이 여직원은 고졸 출신으로 사무보조 같은 포지션에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이 부장님이 직접 채용을 해서 스테이플러 심 가는 법부터 가르친, 거의 딸이나 마찬가지인 직원이었다.


술이 술술 들어가신 부장님은 살짝은 꼰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즘은 아니라고는 해도, 윗사람이나 고객들이랑 술을 마실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맞장구는 치고 있었지만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여직원은 일본인답게 내내 무릎을 꿇은 채로(좌식 테이블이었다) 부장님의 잔이 비는지 주시하며 본인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예쁘장한 외모에 정돈된 화장, 솔직히 말하자면 좀 놀 법한 외모를 가져서, 이런 부분은 그래도 제대로 하는구나, 하고 놀랄 정도였다.


돌아가는 길엔 부장님이 택시로 한 명, 한 명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셨다. 과한 친절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먼저 내린 그녀는, 내가 택시에서 내릴 때쯤 아까 교환했던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다. '오늘 감사했어요. 내일 양고기 파티에도 같이 가면 좋겠어요.' 내가 다음날은 미팅으로 출장 오시는 분이랑 저녁을 먹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양고기 파티란, 어떠한 이유로 남들보다 세금을 덜내게 된 직원이 돈이 남는 분이 젊은 직원들에게 양고기를 쏘겠다고 해서 기획된 모임이었다. 나는 못가서 미안하다고 했다가, 출장객과의 저녁 식사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중간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갔을 땐 이미 양고기는 다 먹어가는 때였고, 우린 곧바로 2차로 이동했다. 2차는 일본에선 흔히 있는 다트바였다. 술을 마시며 다트나 포켓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데낄라를 먹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았는데, 다음날 출근이 있으니 저렴한 하이볼 세트를 주문했다. 나는 술이 약하기 때문에 우롱차와 물로만 텐션을 유지했다.


초심자의 행운으로 첫판만 이기고 나머지는 완패했던 다트, 아무도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던 포켓볼을 치며 신나게 놀고 밤 11시쯤 돼서 파했다. 나빼고는 다들 술이 들어간 상태라 서로가 서로를 챙길 여력도 없이, 가게를 나오는 타이밍도 제각기, 집 방향도 제각기여서 우리는 각자도생으로 귀가를 했다. 다음날 여운을 회사에 조금 가지고 온 정도였다.


그 밤에 자회사 여직원이 자택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97년생, 28살이 되는 생일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그녀가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아서 오후쯤 집으로 갔으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급하게 연락한 어머니도 집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경찰까지 불러 집을 강제로 열었더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타살 정황은 없을지 조사하고 간단히 부검도 진행하느라 장례까지 며칠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것도 며칠 걸렸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지만 급성알코올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추측하고 있다. 아이스티맛 하이볼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셨던 건 있지만, 그렇게 많이 마셨던가? 싶었다. 부장님에 의하면, 경찰이 '평소에 와인을 마셨나요?'라고 물어봤다던데, 우리끼리는 와인을 마시지 않았어서 그녀 혼자 와인을 마셨나,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겨우 두 번 만난 사이에 젊디 젊은 직원이 하룻밤에, 심지어 나도 함께 놀았던 밤에 그렇게 갈 줄이야. 이게 꿈인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신기루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인생에서도 갑작스런 결말이지만, 내 인생에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장례식에는 모두가 참석하게 됐다. 일본의 장례식은 결혼식처럼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기 때문에, 언제든지 조문을 할 수 있지 않았다. 다른 어느 행사보다 시간엄수가 중요해서 퇴근 전 시간부터 이르게 움직여서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만큼은 두 회사가 나뉘어서 조문을 했다.


장례식장은 깔끔하고 아름답게 꾸며져있으면서도 어딘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갔던 건 '오츠야お通夜', 정식 장례식은 마지막날의 '오소기お葬儀'였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적었는지는 몰라도 회사 사람들을 빼면 몇 명 오지 않았다.

*오츠야는 검은 정장이 아니라도 조금은 용서받는 자리(검은 정장이 원칙이지만), 오소기가 더 길고 엄숙하게 진행하는 행사다. 둘다 진행시간이 정해져있고 지각은 엄금.


저녁, 오츠야가 시작됐다. 스님이 불경을 외고 추모사를 전했다. 조문객에게도 불경집 같은 책을 건네주는데, 페이지를 한박자 늦게 찾아 읽느라 땀을 삐질 흘렸다. 그 다음으론 조문객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돌가루를 작은 돌에 올리며 인사를 하고 가족들에게도 목례를 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스님의 목소리 말고는 목놓아 우는 사람도, 흐느끼는 사람도 없이, 간혹 코를 훌쩍이는 사람이 간간이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가 스피치처럼 조문객들에 대한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 텐데, 사람들 앞에서 먼길 와주셔서 감사하다고까지 말해야 하다니, 일본의 장례식은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도 했다. 굳이 안 해도 돼,라고 하기보단, 묵묵히 기다려주는 시간. 내 감각과는 다른 배려가 있는 나라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 여동생들의 손을 꼬옥 잡으며 울음을 겨우겨우 먹어가며 말하는데, 여동생 한 명은 멀뚱멀뚱히 서있고, 남동생인가보다 했던 남자친구도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울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 슬픈 것이었을까. 아이고, 어떡해, 하며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은 없어서 좋은가했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마저 마음껏 울어제끼지 못하는 장례식장에서 어딘가 차가움이 느껴졌다.


일본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사람은 나와서 인사하라고 한다. 조문객들이 한 명씩 고인의 얼굴을 보고 다시 명복을 빌어주었다(나는 용기가 없어서 보지 않았다). 얼굴을 보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는 건지, 사람들의 훌쩍이는 소리는 조금 커졌다. 인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오츠야는 결국 조용하고 차분하게 끝이 났다.


혹자는 일본의 장례식은 조용하게 조문하는 것이 매너입니다, 라고 아는 체를 할 수도 있다. 문화를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슬픔을 발산하기보다 가두어두는 느낌이 영 와닿지 않았다. 어머니의 격렬한 흐느낌이 너무 튀어버리는 분위기가 어머니를 더 압박하는 느낌이 들어서도 더 그랬다.


그 다음날, 오소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두 번 다 참석할 정도의 사이도 아니였고, 오소기까지 참석하는 사람들은 적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전에 고객사에 방문하는 일도 있어서 시간상으로도 무리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사실 차가웠지만.


해가 넘어가고, 어머니와 여동생 한 명이 인사차 회사에 방문했다. 딸의 짐을 가지러 온 것도 있었을 것이다. 구움과자 한 박스도 사서 오셨다. 모두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엄숙하게 맞이했는데, 어머니는 딸의 일로 민폐를 끼쳤다며, 이번 일은 감사했다고 했다. 아무도 그게 무슨 민폐냐며 손사레를 치는 일이 없다. 조용히 어머니의 말을 경청할 뿐. 아마도 형식적인 인삿말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본의 민폐(迷惑, 메이와쿠) 문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민폐가 아닌 일엔 민폐라고 하고, 민폐인 일은 덮는 듯한 인상.


죽음에도 문화가 있음을 실감했다. K팝이 좋은 일본인과 일본 여행이 좋은 한국인. 표면적인 엔터테인먼트는 취향의 문제지만, 그 속의 깊은 정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슬픔은 같지만 표현하는 방법도 받아들이는 방법도 달라서, 일본에 와서 또 한번 내 나라가 아님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