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협력업체 사람과 식사가 있었다. 사실 내 일과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는데, 협력업체 회사 사무실로 미팅을 나갔던 직원 보고 저녁 같이 먹자고 했더니 과장님이랑 협력업체 사람, 셋이서 같이 왔다.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출발한 사람도 셋. 6명이서 마침 어제 개업한 우즈베키스탄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낯선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다보니 음식 얘기를 주로 나누다, 주제는 여자친구가 만드는 도시락으로 흘러갔다. 한 젊은 직원이 잠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듣도보도 못한 음식을 만들어먹자고 해서 고군분투 했다는 얘기를 시작해서다. 같이 만들자던 게 결국 혼자 다 하게 되었고, 열심히 만들었더니 결국엔 고수로 만든 소스가 맛없다는 평만 듣고 끝난 것이다. 그런 알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게 이상하다, 이 여직원이 참 헌식적이었다 등의 이야기에서, ‘뭘 만들어달라고 하면 가장 무난할까?’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과장님은 카레도 집마다 맛이 달라 무난하지 않다는 둥, 고기감자조림(니쿠쟈가)은 지역마다 넣는 고기가 다르니까 무난하지 않다는 둥. 이런저런 음식을 생각하다 ‘오므라이스’가 가장 무난하다는 결론이 났다. 메이드카페 오므라이스에서 실패한 적이 없으며, 케첩으로 메시지도 넣을 수 있다는 이유.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로 이상한 전 남친을 만났던 여직원도 이제부턴 메이드 카페 메뉴로 준비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말했다.
갑분싸를 각오했지만, ‘여자친구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싫다, 내 스스로 만들어서 줄 의향은 있지만 만들어달라고 달라고 하는 건 싫다고 얘기했다. 다들 별로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저 드센 외국인 여자가 된 것이다. 공감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회사 사람들이니 너무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나 싶어 조금 기죽었다. 과장님이 나폴리탄도 좋다고 해서 나폴리탄 잘만든다고, 이번주 도시락도 나폴리탄이었다고 급 어필을 했다.
작년 12월에 종영된 일본 드라마, <그럼 네가 만들어 봐(じゃあ、あんたが作ってみろよ)>는 여자친구의 밥상에 훈수까지 두는 초가부장적인 주인공이 청혼에 거절 당하면서 여자친구가 만들었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내용이다. ’남자가 무슨 요리를‘이라는 편견을 어렵사리 집어던지고, 요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여자친구를 이해해나가는 훈훈한(?) 스토리. 2025년에 나올 드라마는 아닐 것 같은데, 라고 느낄 정도로 현대 일본 사회는 아직도 여자가 음식을 만드는 게 미덕인 나라다.
대학원 시절, 알바처에 신혼인 여직원이 있었다. 다른 부서에 있다가 그쪽 업무가 너무 없어서 우리 팀으로 오게 됐다. 직장인 대학원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했었는데, 학생들이 직장인이다보니 수업이 평일 저녁과 토요일에 있었다. 이 직원은 업무가 너무 없어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성장도 안 느껴져서 고민하던 차에, 우리 팀으로 오게 된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동이 정해진 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럼 저녁밥은?’이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일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잘됐네, 늦게 퇴근해서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 그럼 가사 분담을 이렇게 다시 하자, 등 여러 멘트가 있었을 텐데 저녁밥만 걱정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 다시 얘기를 나눴더니, 이 직원은 늦게 퇴근해서 피곤한 것보다, 늦게 들어가서 보는 남편의 얼굴이 무섭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이 직원의 남편 같은 남자만 있는 건 아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50대 여자 계장님은 본인이 그런 상황이었을 때 평일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자고 합의를 봤었다고 했었고 지금도 남편이 풀 재택이 가능해서 가사를 많이 봐준다고 했다. 회사에 늦장가를 간 아저씨 직원은 아내가 요리며 가사며 잘 못해서 본인이 대부분 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여자로서의 애정 표현’이자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는 나라. 스시집에서 여성이 마스터가 될 수 없다며, 금녀禁女의 세상으로 취급해온 것과는 상당히 모순적인 일이다(요즘은 편견이 줄어들기 시작해 여성 스시 장인도 생겨나고 있다).
이 일본의 여성력(女子力, 여자가 가져야 하는 능력과 같은 의미, 요즘 일본에서는 잘 안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에 관해서는 또 기회가 있으면 얘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