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온 지 햇수로 4년째

by 일본기업영업맨

일본에 온 지 만 3년이 조금 안 됐고, 햇수로는 4년차다. 해외에 산다는 새롭고 들뜬 기분을 느끼는 시기를 지나 슬슬 한국이 그리워지는 시기. 일본에 대해서는 100퍼센트 아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시기. 거리를 걷다가 모든 것이 일본어로 적혀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회사에서 모든 게 일본어로 돼있는 노트북으로 모든 일들을 일본어로 처리하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게 되는 나날들.


일본에 온 지 1~2년 차에 재미있었던 건 길이나 슈퍼에서 아는 일본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알바처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알바처 근처 길에서 만나 인사를 하거나 슈퍼에서 장보다가 마주쳐서 스몰토크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이 동네에 포함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디서 굴러들어 온 떠돌이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시간 같기도 하다.


행정상으로는 전입신고를 했으니 이 동네 사람인 건 맞지만, 외국인으로서 심적으로는 늘 겉도는 느낌이었다. 편의점에서 자연스럽게 물건을 골라 계산을 하고, 슈퍼 셀프 계산대 화면에 일본어로 적힌 계산(お会計), 결제방법(現金, クレジットカード, 電子マネー등등)을 자연스럽게 터치해서 장보기를 끝내면서 최대한 이방인(외국인)임을 들키지 않으려고도 했다. 아직은 일본에서 '산다'라는 느낌이 적고, 사는 흉내를 냈던 것 같다.


3년차, 회사에 들어오고는 일본에서 산다는 감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대학교 기숙사가 아닌 남들 사는 듯한 맨션에 들어가게 살게 되었고, 유학생이 아닌 외노자로서 일본 어른의 삶을 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본어 모른다고 농담할 때만 외국인임을 의식하고, 평소엔 이 생활을 '일본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그냥 내 생활로 받아들이게 됐다. 오히려 길에서 회사 사람 안 마주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얼마 전 주말엔 길에서 고객사 사람도 만나 주말의 자유마저 잃은 거 같아서, 이방인이라는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어졌다.


일본 와서 첫 골든위크 때 도쿄 후글렌 커피에서

한국에 한번씩 돌아갈 때도, 초반에는 여행객마냥 과자도 잔뜩 사가고, 국수며 와사비며 칫솔도 사갔다. 100엔샵이라고 부르는 다이소나 세리아에 가서는 110엔짜리 포장용품이며 디즈니나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파우치를 사서 거기다 과자를 넣어 선물하곤 했다. 드럭스토어에 가서는 저렴한 화장품이나 유명한 약을 사서 가기도 했다. 그마저도 모자라 공항에서 파는 과자도 사고, 위스키를 사가기도 했다. 모처럼의 귀국 때 가족, 친구들에게 일본에서 들고온 무언가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어딘가 옛날옛적 일본에 배 타고 가서 일제 과자 사오던 친척 어르신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여전히 평소에 맛있게 먹었던 과자나 지역 특산물 같은 건 사간다. 아직도 빈손으로 갈 정도는 아니다. 생일선물이 늦어버린 친구에게는 일본 소품샵에서 선물을 사가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겐 과자라도 챙겨준다. 가족들에게는 조금 고급의 주전부리를 사가거나 선물할 물건들을 일본에서 사간다. 꼭 일본 거를 사가겠다는 것보단 한국에서 살 시간이 없을 테니 일본에서 사가겠다는 생각 반, 그래도 일본제가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반으로 선물을 사가는 건 끝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슬슬 외국에서 짧게 살았다의 기간을 벗어나고 있다. 신분도 바뀌어보고, 주소도 바뀌어보고, 얼마 이상 쓰면 발급되는 신용카드도 발급 받아보고.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여권에 찍히는 도장도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 또 1년이 지났을 땐 어떤 생각과 감각으로 일본에서 지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래 살아 처음 왔을 때의 허둥대고 삐걱거렸던 일본 생활을 아주 잊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일본에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 한국 가면 못살 것 같다'든지, '한국에서는 일하기 힘들 것 같다'든지, 내 고국을 낯설고 어려워하는 지경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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