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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아5

제2부 도전

by 박루이


5장. 시장의 장벽


재래시장의 ‘순이네 분식’은 기적의 시작이었다. 에아가 제안한 맞춤형 마케팅 전략은 놀랍도록 효과적이었다.


“사장님, 오늘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혼밥족을 위한 가성비 최고 세트’를 출시하고, 지역 맘카페와 단톡방에 집중적으로 홍보하십시오.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시간대에 2030 여성 직장인 유입이 적고, 주변 경쟁사 분석 시 혼밥 메뉴가 취약합니다.”


에아의 조언대로 순이네 분식의 SNS 계정에 홍보물을 올리자, 신기하게도 평소 텅 비어 있던 저녁 시간대 테이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재고 관리도 훨씬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사장님은 연신 “이거 정말 AI가 하는 게 맞나? 내가 꿈꾸던 딱 그거여!”라며 감탄했다.


순이네 분식의 성공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영주 시내 다른 가게들도 오더베이스에 관심을 보였다. 쌀집, 채소가게, 떡볶이집... 한두 곳씩 오더베이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다. “또 무슨 신기한 거 들고 왔냐?”, “지난번에도 망했잖아!” 하지만 그는 에아의 코칭대로 그들의 사업 데이터를 분석하여 구체적인 성장 전략을 제시했고, 순이네 분식의 성공 사례를 들어 설득했다. 몇 주 만에 영주 시내의 10여 개 가게가 오더베이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작은 성공이었다. 성훈의 자취방은 밤마다 열기로 가득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버그를 잡고, 고객의 요청사항을 반영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지훈아, 이 사장님은 주문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고 하시는데?”


[성훈 님, 해당 사장님의 연령대와 기존 주문 습관을 고려할 때, 직관적인 ‘원터치 주문’ UI를 추가하고, 음성 인식 기능을 결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관련 코드 레퍼런스를 제공합니다.]


에아의 피드백은 늘 빠르고 정확했다. 그들은 에아의 지시대로 기능을 개선했고, 사용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업데이트 속도와 편리함에 만족했다. 영주에서의 작은 성공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거라면, 정말 된다!’


하지만 영주는 너무 작았다. 그들은 더 큰 시장이 필요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 모든 소상공인의 상생을 돕는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다음 스텝은 서울이었다.


“성훈아, 이제 서울로 가자. 영주에서 쌓은 레퍼런스라면 분명히 통할 거야.”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성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서울 가서 판을 제대로 키워보자!”


그들은 보증금 없는 반지하 사무실을 겨우 구했다. 영주에서 모은 쌈짓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간판 하나 달고, 낡은 중고 사무용 가구를 들였다.

하지만 서울은 영주와 달랐다. 그들의 자신감은 대도시의 거대한 벽 앞에서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오더베이스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미 대형 POS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어서요.”


“AI 분석요? 그런 건 대기업 마케팅 팀에서나 하는 거죠. 저희 같은 작은 가게가 쓸 일이 있을까요?”


“이지훈 씨... 혹시 전에 오더베이스 하셨던 분 아닌가요? 그때는 좀... 결과가 안 좋았던 걸로 아는데.”


수많은 가게를 찾아다니며 문전박대를 당했다.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몇 번의 미팅 끝에 겨우 약속을 잡으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싸늘한 시선으로 일관했다. 특히 그의 과거 실패는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았다.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았다. ‘저 사람, 망한 회사 사장이래.’

성훈도 지쳐갔다.


“지훈아, 왜 안 통하는 걸까? 분명히 영주에서는 잘됐는데. 뭐가 문제지?”


성훈의 물음에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금 익숙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시장의 장벽은 너무나 높았고, 그는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 되살아나 그를 옥죄었다.


‘그래, 난 안 돼. 역시나 또다시...’


그는 에아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에아,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영주에서는 통했는데, 서울에서는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다시금 좌절감이 묻어 있었다.


[지훈 님, 당신들의 노력은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장은 영주와는 다른 특징을 가집니다.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문제가 있습니다.]


에아는 차분하게 문제점을 짚어냈다.


[첫째, '신뢰 구축의 문제'입니다. 영주에서는 지훈 님의 인맥과 순이네 분식의 성공 사례가 즉각적인 신뢰를 주었지만, 서울은 불특정 다수와 익명성에 기반한 시장입니다. 영주에서의 레퍼런스만으로는 새로운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실패 이력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가치 제안의 불일치'입니다. 영주에서는 '매출 증대'와 '편리한 관리'가 핵심 가치였지만, 서울의 소상공인들은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효율적인 고객 관리'와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단순한 매출 증대 약속보다는,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전략'과 '고객 재방문율'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셋째, '타깃 세분화의 부족'입니다. 서울은 너무나 거대한 시장입니다. 모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오더베이스의 자원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정 업종이나 특정 지역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카페나 샐러드 전문점처럼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높은 젊은 오너들이 운영하는 업종을 우선 공략하고, 그들의 성공 사례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에아의 분석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그저 ‘영주에서 잘됐으니 서울에서도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에아는 그가 보지 못했던,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서울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특히 '신뢰 구축의 문제'와 '가치 제안의 불일치'는 그의 과거 실패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 더욱 아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에아?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성훈의 목소리에도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아닙니다. '다시 시작'이 아니라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아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온라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집중하십시오. 직접 발로 뛰는 것보다, 소상공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유튜버와 블로거 같은 인플루언서를 통해 오더베이스의 AI 분석 기능을 시연하고, 실제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들의 구독자들은 이미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무료 체험 프로모션'을 파격적으로 확대하십시오. 데이터 분석 기능은 직접 경험해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셋째, 타깃을 서울 강남 지역의 샐러드 전문점이나 비건 카페 등으로 한정하고, 그들의 데이터에 최적화된 마케팅 전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십시오. 지훈 님은 영업 담당자로, 성훈님은 기술 지원 담당자로 역할을 분담하여 집중 공략해야 합니다.]


에아의 통찰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에아의 지시대로 전략을 수정했다. 성훈은 인플루언서 섭외에 필요한 자료와 데모 영상을 만들었고, 지훈은 에아의 분석을 토대로 강남 지역의 특정 카페들을 대상으로 '무료 AI 마케팅 컨설팅'을 제안하며 접근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보여주는 에아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점차 그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 우리 가게 고객 데이터에서 이런 인사이트가 나온다고요? 그럼 정말 이걸로 매출이 오를 수 있나요?”


한 샐러드 카페 사장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에아와 함께 그들의 잠재 고객 분석, 신메뉴 개발 방향, 심지어 SNS 게시물 최적화 방안까지 제시했다.

에아의 통찰력은 시장의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들은 서울 시장에서 그들만의 틈새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AI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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