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주 차: 세상의 법정 앞에 선 왕 (마 27:1-26)
그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밤새 불법으로 재판하여 내린 사형 판결을 확정하고, 예수님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유대 공회는 스스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에, 로마의 법정을 통해 자신들의 살인 계획을 성취하려 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본 가룟 유다는 마음에 가책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마 27:4)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후회(remorse)였지만, 회개(repentance)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바로 전 장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 역시 처절한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곡은 절망이 아닌 회개로 이어져 회복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유다의 후회는 죽음으로, 베드로의 후회는 생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죄책감 앞에서 우리가 어디로 달려가는가, 절망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은혜인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 빌라도는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간결하게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마 27:11).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온갖 고발 앞에서는 “아무 대답도 아니” (마 27:12) 하셨습니다. 그의 침묵은 죄가 없으시기에 변명할 필요가 없는 당당한 침묵이었고, 이사야 53장 7절의 예언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잠잠한 순종의 침묵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도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월절의 관례를 따라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풀어주려 했습니다. 그는 군중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민란을 일으킨 살인자요 강도인 “바라바”냐, 아니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바라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군중들은 역설적이게도 거짓 ‘아버지의 아들’을 선택하고, 참된 ‘하나님의 아들’을 버렸습니다.¹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에 넘어간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결국 불의와 타협합니다. 그는 군중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 27:24). 그러나 물로 손을 씻는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를 용납한 그의 죄가 씻겨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그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비겁한 총독으로 영원히 기억합니다.
빌라도의 책임 전가에, 군중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말로 응답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25).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메시아를 죽인 죄의 값을 스스로와 후손들에게 돌리는 저주를 선포한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 27:26).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봅니다. 유다의 선택, 빌라도의 선택, 군중의 선택. 그들은 모두 나름의 이유로 예수를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빌라도가 군중에게 던졌던 질문,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마 27:22)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중립에 머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압력과 나의 이익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는 빌라도의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그를 나의 왕으로 고백할 것인가?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합니다.
각주:
¹ ‘바라바(Barabbas)’는 아람어로 ‘아버지(abba)의 아들(bar)’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군중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로마에 대항한 폭력적인 혁명가였던 ‘거짓 아버지의 아들’을 놓아달라고 외치고, 평화의 왕이신 ‘참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라고 외치는 비극적인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다의 후회와 베드로의 후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나는 죄를 지었을 때 절망하며 숨는 편입니까, 아니면 아파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편입니까?
빌라도는 진실을 알았지만 군중의 압력 때문에 불의를 행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여론 때문에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포기하거나 타협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는 질문에, 나는 오늘 나의 삶으로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달려가기: 이번 주, 죄책감이나 실패감이 나를 짓누를 때, 유다처럼 절망 속에 머무는 대신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진리의 편에 서기: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불의나 진실이 아닌 것을 목격했을 때,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대신, 지혜롭게 그러나 용기 있게 진리의 편에 서는 작은 행동 하나를 실천하겠습니다.
나의 선택 고백하기: 이번 주, “나는 예수를 나의 왕으로 선택합니다”라는 고백을 의식적으로 기도와 삶 속에서 실천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뜻과 세상의 요구가 충돌하는 순간, 예수님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