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8
「죽음을 생각하다
지난밤에 지독한 몸살을 앓다가 새벽에 깨어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러다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 공기를 마시고 일어나 앉았다. 명상을 하듯 내 안에 있는 무심한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다가 죽는 게 아닐까?'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간혹 말을 건네고 스스로 답을 찾았던 그런 때와는 달리 죽음이라는 큰 문제 때문인지 답변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속에서 한참만에 답변이 들려왔다. 아이들이 떠올랐다. 엊그제 매장에서 보았던 딸과, 전화 통화만 했던 아들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점점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질 것은 자명하다. 냉혹한 사회에 든든한 배경도 없이 던져진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무 자주 가면 간섭한다고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자니 걱정이 앞선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자조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그래서 어떤 형식으로든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을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인간도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가 되면 가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단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2. 위로가 된다.
인간(人間)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다. 힘들 때 등을 내어주는 친구가 있으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시대에 누구에게 선뜻 등을 내어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더 고립된 것 같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 2위를 늘 다투니 말이다.
괴롭고 힘들 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가 내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아닌,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주는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내속에 있는 또 다른 나, 영혼이다.
그는 죽었을 때나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내 속에 공존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 있다. 그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우스운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가 들은 희한한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을 것이다. 자동차 바퀴에 깔린 아이의 엄마가 그 자동차를 번쩍 들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말하자면 그 아이의 엄마는 본래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도 못했고,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한 아이가 위험에 처하자 정신세계 속에 있던 그녀의 영혼이 그녀의 힘을 깨웠고 그 힘을 사용해 아이를 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게 흥미로운 유희를 위해서 영혼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에게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을 때,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설 때,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비로소 나의 영혼이 내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몸속으로 영양분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을 때 깨어나 활동을 하게 하는 오토파지(autophagy)에 의해 활동을 시작하는 세포와 같이,
우리 몸속에 잠재한 영혼이 위험을 대처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혼이 나를 위기에서 바로 구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조언 비슷한 행위를 함으로써 나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다른 인격체가 아닌 나 자신의 안에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를 찾기만 하면 말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