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순찰, 구조의 첫걸음

구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by 살구름 Salgurum

11월 초, 처음 순찰(Patrol)을 시작했다. 웨스트비치에는 약 11개 정도 순찰대가 있는데, 나는 ECHO 순찰팀이다. 보통 30명 정도가 함께한다. 한 달에 한번, 주말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바다를 지킨다. 순찰대는 순찰대장(Captain), 부대장을 중심으로 역할에 따라 소그룹으로 나뉘는데, 보트구조요원, 무전통신담당, 응급구조담당, 고급응급구조 담당, 사륜구동차 담당, 구조견팀이 있다. 나는 갓 들어온 신입으로 기본 응급구조담당팀(First Aid Officer)에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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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구조봉사를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실력은 수영뿐만 아니라 심폐소생술(CPR)을 포함한 응급구조자격 (First Aid)이다. 꽤나 비용이 드는 교육이 봉사자들에게는 무료로 제공이 된다.


처음 심폐소생술을 배운 건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 직후였다. 수많은 재난 뉴스를 접해왔지만, 왜인지 그날의 뉴스는 유난히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다.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것도,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것이 바로 심폐소생술이라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특별히 봉사정신이 투철한 것도,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던 나였지만, 다음날 아침 엄마를 깨워 동네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CPR 교육에 같이 가자고 했다. 혼자 가긴 민망했기에 엄마를 졸랐지만, 여러 번 거절당했다. 결국 혼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엄마는 “구경이나 해볼까?” 하며 따라나섰다.


마침 그날은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아무래도 큰 사고 이후로 많은 이들의 인식에 심폐소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

처음 접한 장비들과 마네킹, 그리고 심폐소생을 할 때마다 박자, 깊이, 속도 등을 자동으로 측정해 주는 시스템이 매우 신기했다. ‘생각보다 최첨단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집중해서 배웠다.



“가장 CPR을 잘 수행한 사람에게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강사님의 말이 나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내가 1등 해야지 마음먹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CPR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크고 힘들다.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탁탁 박자에 맞춰 심폐소생을 이어나갔다.





“가족이 쓰러졌다고 생각하세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강사님의 외치는 소리가 내 심장을 강하게 쳤다.



"삐- 모두 멈춰주세요"

귀를 울리는 알람 소리에 순간 긴장이 풀려버렸다.




몇 시간 같던 몇 분이 지나고

자신감을 머금고 바라본 화면엔 엄마의 이름이 1위로 떠 있었다.


옆을 보니 엄마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손등에선 살짝 피가 나고 있었다.

억지로 끌려온 엄마가 그렇게 진지하게 참여할 줄은 몰랐다. 가장 연장자였던 엄마는 건장한 남성들과 젊은 학생들을 제치고 1등 상품인 작은 텀블러를 깡마른 손에 쥐었다.


기자에게 눈에 띈 우리는 짧은 인터뷰를 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라는 강사님의 말씀에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는 힘이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요. 그냥... 살리고 싶었어요.”

공감능력 부족으로 매번 나랑 부딪히는 T인 엄마의 인터뷰는 F인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 이후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CPR 교육이 확산되고, AED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조는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수영도 배우고, 경험도 쌓을 겸’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 책임을 지닌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구조는 혼자만 잘하면 되는게 아니라 팀워크 속에서의 내 역할을 충실히해 나가야한다.


나의 첫 순찰은 다행히 조용히 지나갔다.
바다 멀리 무언가를 발견한 부대장의 망원경을 따라 보트가 출동했고, 해변에 버려진 의자 몇 개를 수거해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순찰에서는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나는 다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맡은 바 역할을 침착하게 해내자.

그것이, 내가 배운 ‘구조의 첫걸음’이니까.



미니 상식


호주에서 응급구조순서는 'DRSABCD'라는 약어로 기억된다.


Danger (위험 확인): 구조자와 환자에게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Response (의식 확인): 환자의 의식이 있는지 반응을 체크한다.

Send for help (도움 요청): 주변사람들에게 000 (호주의 119)에 연락과 자동심장충격기를 가져오라고 부탁한다.

Airway (기도 확보): 고개를 젖히고 턱을 들어 올려 기도를 열어준다. 또는 OP (Oropharyngeal Airway_혀가 기도를 막는 것을 방지하는 플라스틱 기구)를 사용한다.

Breathing (호흡확인):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CPR (심폐소생술): 30회의 가슴 압박과 2회의 인공호흡을 반복

Defibrillation-Defib (자동심장충격기): 패드를 부착하고, 전원을 켠 후 음성안내에 따라 전기 충격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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