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바다

바다에서 인생의 방향을 찾다

by 살구름 Salgurum

3달 동안 수영장에서 겨울 혹한기 훈련을 마친 후 드디어 바다로 갔다. 드넓은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졌고, 오른쪽에선 요트들이 왼쪽에선 서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의 봄을 즐기고 있었다. 햇살은 뜨겁게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파도는 거품을 물고 찬 공기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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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훈련은 50미터 달리기, 50미터 수영이다. 저 멀리 바다에 커다란 빨간색 고무풍선이 띄워져 있었고, 그 고무풍선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해변으로 오는 코스였다. 해변 순찰을 돌 때 바다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지만, 지금 준비하는 SRC (Surf Rescue Certificate 서프 구조자격) 그리고 Bronze Medallion (기본 수상구조자격)을 통과를 목표로 바다 수영 훈련이 진행된다.


생각보다 쉬워 보이는 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물에 첨벙 발을 담갔다. 머리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 새파란 차가움이 머릿속을 툭 건드렸다. 열심히 바닷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허벅지만큼 물이 차올랐을 때 그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시작했다. 열심히 수영하다 정면에 있을 풍선을 확인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직선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도 때문에 나는 옆으로 밀려 나가 치우쳐 수영을 하고 있었다. 파도를 거스르며 풍선을 향해 가려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심했다. 다행히 중간지점에 있는 구조대원의 서브 보드를 붙잡고 잠깐 쉬었다. 내가 해양구조대인데 구조를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구조대원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 다시 수영을 하고, 겨우겨우 목표지점인 고무풍선에 다다랐다.


그런데 웬걸 발이 안 닿는 게 실감이 나면서 불안함이 엄습했다. 이제 너무 지쳤는데 숨도 안 쉬어지고, 짠물도 너무 먹었고 더 이상 수영 못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미 서프보드는 해변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고, 죽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헤엄치는 것 밖에 없었다. 다리에 쥐가 나고 숨이 점점 짧아지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수영을 하는 거였는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신이 아찔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헤엄쳤다. 중간에 발이 땅에 닿나 확인해 봤는데 그때마다 허공에 떠 있는 애처로운 나의 다리만 발버둥 치고 있었다. 다시 다리를 올려 헤엄치고, 내려서 모래의 촉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발이 땅에 닿은 순간 힘이 풀려버렸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탈수가 안 돼서 물을 잔뜩 머금은 이불빨래처럼 축 쳐져 주저앉았다.


먹먹했던 귀에 평화로운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어왔다. 짧은 5분 동안 내가 살려고 발버둥 친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물에는 빠져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는지 열심히 헤엄쳤다. 모래사장 위에 지친 몸을 얹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해양구조단원이 다가오셨다.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고, 아주 잘 헤엄쳐왔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조언을 덧붙이셨다.



"When you swim, the breath is everything.

The sea is wild and full of surprises—

its waves twist and turn, and danger hides in their dance.

However still, the ocean breathes.

If you follow the rhythm of that breath,

you’ll find your way."


"수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숨이야.
바다는 거칠고 예측할 수 없어—
파도는 이리저리 춤추며, 그 안엔 위험이 숨어 있어.
그럼에도 바다는, 늘 숨 쉬고 있어.
그 숨결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돼."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인생도 바다처럼 똑같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럴 땐 당황해서 숨도 못 쉬고 방향을 잃지만,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숨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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