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비치의 첫발

유일한 한국인 해양 구조봉사단(Surf lifesaving)이 되다.

by 살구름 Salgurum

파아란 물결 위에 햇살의 파편들이 떨어져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어낸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귀를 얼얼하게 감싸고 파도는 찰싹 소리를 내며 하얀 팝콘 방울을 만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머릿속을 맴돌던 걱정도 저 멀리 해안가로 흩뿌려진다.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머릿속은 드넓은 푸른빛으로만 가득하다.

어린시절 바닷가에 가면 해안가에 떨어진 소라를 주어 귀에 대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다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귀 안을 가득 채웠다.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지금도 눈을 살며시 감으면 흐릿하게 저 멀리서 바다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를 따라서 온, 호주의 작은 도시 애들레이드.

나는 지금 유일한 한국인 서프라이프 세이빙 Surf lifesaving(해양 구조 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호주에서 큰 비영리 봉사 단체 중 하나로, 커다란 섬나라의 해변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수영객과 해변가의 안전을 위해 11월부터 3월까지 순찰을 돈다. 익사, 타박상과 같은 사고의 응급처치는 물론 상어, 독해파리와 같은 해양동물에 대한 위험에도 대비한다. 빨간색 반바지와 SURF PATROL (서프 순찰대)라고 인쇄된 노란색 셔츠, 그리고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해양 구조 봉사단이다. 순찰은 도보, 구조보트, 4륜구동차량, 헬리콥터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호주에서 해안가 익사 사고는 관광객에게 꽤나 자주 일어난다. 해변의 위험한 해양 동물, Rip(이안류: 바닷물이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강하고 빠르게 빨려 나가는 흐름) 등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위험이 많이 있다. 그래서 Water Safety 해변 안전 교육을 하는데 영어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전달이 명확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매니저를 도와 한국말 번역과 영상 제작을 돕고 있다.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에피소드도 있다. 해변에 빨간색과 노란색 체크무늬가 있는 커다란 깃발 두 개를 꽂아 놓고 수영하려면 그 사이에서 해야 안전하다고 설명했는데. 교육을 들은 수강생이 자신은 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안전지대 밖에서 수영한 황당한 사례가 있었다.



웨스트 비치 West beach에서의 봉사활동은 작년 여름부터 시작해 벌써 6개월이 되었다. 공항 옆 해변이라 비행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짝이는 바닷가와 그 위를 지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1년 전 호주에 발을 내디뎠던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스친다.


유학의 길로 이끈 불쏘시개 중 하나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청춘의 반을 함께 보낸 끝에 이별이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이별 후 누구나 그렇듯 심하게 앓아누웠고, 조금 더 심했는지 응급실까지 실려 갔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수술을 하며 마취에 들기 전, 수술 후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기도했다. 불타는 듯한 수술 부위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눈을 떴고, 지친 채 병실에 누웠다. 오랜만에 누리는 휴식이었지만, 몸의 아픔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앞으로 어떻게든 살겠는데, 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병실에 누워 옛날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휴대폰 상단을 눌러 과거로 돌아갔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띄었다.

10년 전,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어떤 따뜻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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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애들레이드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시골풍경이었다.

대학교 2학년 호주로 떠났던 여행지 중 한 곳.

미세먼지 가득한 병실 창밖과 분주한 병실의 소리는 점차 흐릿해지고,

호수에 반짝이는 하늘과 나무가 눈에 아른거렸다. 손을 뻗으면 폭신한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아, 저기 다시 가서 쉬고 싶다, 아니 잠깐 살아보면 어떨까?’

막연한 두근거림이 나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