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말해줄 수 없는 추상화에 빠져드는 법
‘붓질 몇 번 한 거 아닌가?’ 싶은 그림들이 천억 원이 넘는 고가에 거래되는 예술 세계를 이해하실 수 있나요? 20세기 대표적인 미국의 추상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이야기입니다. 형용할 수 없이 마음을 이끄는 힘을 지닌 그의 색면화를 ‘마음의 풍경화’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러나 색면의 직사각형 옆에는 어떠한 설명도, 주제를 유추할 수 있는 제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배경지식과 작품해설 없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창작물과 창작자의 관계는 끝나며, 이후 감상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림을 보는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외부의 해석에 의해 감상자의 경험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아무리 그렇다 한들, 감상자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그림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대체 무엇을 봐야 할까요?
최근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에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여전히 우리가 말을 멈추고, 그냥 바라보길 원합니다.
로스코의 추상화가 이전의 예술가들과 크게 구분되는 점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묘사는 물론, 은유나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체 무엇을 그린 거죠?’라고 묻는다면, 모티브가 된 그 어떠한 물체도 없습니다. 사각형의 배열과 조합, 질감, 농도 등을 다양하게 적용했을 뿐, 그의 그림에는 내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전시 해설문에도 각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나 모티브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거대한 주황색이 그림의 상단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진한 파란색 직사각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색 배경 위에서 미세한 수평 경계선이 보입니다.’ 등 눈으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색과 형상에 대해 한 번 더 짚어주는 정도일 뿐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실질적인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합니다.
추상화의 감상은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힘에 대해 반응할 열린 마음과 약간의 상상력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실제로 신경학자 에릭 캔들(Eric kandel)은 인간이 추상미술을 볼 때 창의력과 상상력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는 뇌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모호한 추상미술을 볼 때 구상미술에 비해 기억, 감정 및 복잡한 시각 패턴의 처리와 관련된 더 높은 수준의 뇌 영역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형상의 부재로 인한 그림의 여백을 감상자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개인적 기억과 감정을 수집하여 채워 넣는 것입니다. 이로써 로스코가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한 말이 과학적으로도 나름 타당한 말인 셈이지요.
예술은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이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탐험할 수 있는 세계이다.
_마크 로스코
1946년 로스코는 모든 형상화 작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추상화에 몰입합니다. 모순되게도 그는 스스로에 대해 추상화가가 아니라며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색채의 단순한 유희를 초월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추상 화가가 아닙니다. 저는 색상이나 형태 또는 그 밖의 어떤 것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기본적인 인간 감정인 비극, 황홀, 죽음 등의 표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 만약 당신이 색상의 관계에만 감동한다면, 글쎄요, 당신은 주제를 놓치고 있습니다.”
_마크 로스코
그는 예술을 장식적 역할보다는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했습니다. 시각적 측면에만 집중한다면 예술의 더 깊고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이런 첨언이 오히려 추상 미술로부터 뒷걸음질을 치게 만드는 요인 같기도 합니다. 숭고한 감정이나 영감을 느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밀려와 자유로운 감상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조언 또한 과감하게 무시해도 좋을 겁니다.
문화예술 커뮤니티 안티에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