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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에 Jun 09. 2023

심리상담센터로 달려간 이유

멘탈 터진 웹소설 작가의 발버둥4

이전 작품의 외전은 사실 출간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보통 작품이 웹툰화가 되면 웹툰 공개일에 맞춰 추가 외전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작품이 웹툰화 되어 공개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내 작품 또한 그림 작가가 바뀌는 등의 이슈로 제작 기간이 길어지고 있었기에 공개 시점을 점쳐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웹툰이 공개된다면 추가 외전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기에 먼훗날 해야 할 작업을 미리 하기 시작했다. 뭐, 생각만큼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 작업에 공백이 있었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머리까지 굳어버린 터라 그 난관을 깨뜨리기가 조금 힘들었다.


어찌어찌 쓰기는 했다. 천천히, 조금씩 분량을 늘려가면서 작업했고, 이내는 외전으로 생각해놓았던 소재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웜업에 있어 비장의 카드였던 기존 작품 외전까지 끝냈으니 이제는 정말 차기작을 준비할 차례였다.


그런데 작업실에 꾸준히 출석하는 게 맘같지 않았다. 계약 첫 달에는 코로나로, 두 번째 달에는 갑작스러운 이사 준비와 이사로 바빴다. 그러느라 또 절반 가량만 겨우 출근하게 됐다. 그 절반의 출근일에 간신히 외전을 마무리했고, 새로운 달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신작에 착수하려고 했는데.


이 역시 마음같지 않았다. 이미 시놉시스는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쓰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건만, 손을 대자마자부터 무언가 미심쩍었다. 그래서 염치불고하고 평소보다 적은 분량으로 출판사에 리뷰를 요청했다.


결과는? 참패.


예상했다. 내가 쓰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니 조급하게 보여줬지 않던가. 하지만 '내가 감을 잃은 상태라 의외로 괜찮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막상 진지하게 글의 문제점들을 듣고 나자 후련하지도,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쓰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고 했으나 그것만큼 찝찝한 말이 또 있을까. 시작부터 찝찝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걸 밀어붙일 만큼 확신이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뒤엎기로 결심했다. 그걸 뒤엎으며 자료 조사를 하고 인풋을 하느라고 작업실 계약 셋째 달을 모조리 날려 먹었다. 자료조사 쯤은 출근해서 해도 죄겠지만, 개인적으로 준비 단계는 자유롭게 하는 게 더 잘 되는 것 같아서 집에서 해결하느라 그랬다. 6개월 계약의 절반을 어영부영 날려먹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캐릭터를 수정하고 이야기 배경도 바꾸고 줄거리도 바꾸면서 새로운 시놉시스를 만들어냈다. 여기까지는 늘 하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불쑥,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시놉시스를 언제쯤 확인해줄 수 있는지 물어본 시점이었다. 독촉을 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일정을 정리해보려 물은 게 다였다. 그때 돌아온 답은 지금 확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엄청난 요동이 일어났다.


사실 직업으로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평가대에 놓이는 것과도 같다. 여기서 첫 관문이 바로 출판사 담당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기획안이나 원고를 보내놓고 나면 긴장을 하곤 했다. 조금 두근거린다든가, 떨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이때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이상으로 심장이 마구 떨리고, 어지러운 기분도 들었다.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토할 것 같아 헛구역질도 몇 번 했다.


피드백이 오기까지 생각을 끊어낼 요량으로 영화 한 편을 틀어놓았는데도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대사를 놓치기 일쑤, 화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꾸만 폰만 들었다 놨다 했다.


그 무렵 나는 매일같이 꿈도 꾸고 있었다. 대개 좋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억울한 일이 생겼는데 그 누구도 내 이야길 안 들어준다든가, 어떤 일을 누구 몰래 하려고 계속 심장 졸이며 긴장하고 있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그 꿈들은 잠에서 깨고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일어나고도 한참동안 찜찜한 기분을 선사했다.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신호였다. 매일같이 꾸는 불안한 꿈, 피드백을 앞두고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데다가 신체적 반응이 오기까지. 나는 손을 벌벌 떨다시피 하면서 이전에 방문한 적 있던 상담센터에 전화했다. 당장 내일 상담이 가능하느냐고 물었고, 운이 좋게도 취소된 예약들이 있어 그 시간대에 상담이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상담 예약을 하고 나서야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놉시스에 관한 피드백은 예약을 마친 뒤에 받아봤다.


사실 나에게는 시놉시스에 관해서 긴 피드백을 받아보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늘 '작업할 때 이 지점은 순화할 필요가 있겠다' 하는 식으로 짚고 나머지는 문제없이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시놉시스일 뿐이건만 장문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때 내 기분은? 기운이 쫙 빠지고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어쩌면 슬럼프라는 사실이 내 스스로 컴플렉스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원고도 아니고 시놉 단계에서 이렇게 많은 지적을 받다니. 이젠 시놉시스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꽤 많이 속이 상했다. 더불어 조바심까지 나서, 출판사에서 짚어준 부분들을 서둘러 수정하기에 급급했다.


급히 수정한 시놉시스를 보내놓고, 다음날에는 예정대로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했다. 피드백을 앞두고 과하게 나타나던 불안 증상, 그런 증상이 나타난 배경까지 다 터놓았다. 그 결과, 혼자서만 생각하던 것과 다른 관점을 둘러보게 됐다.


나는 이제 시놉시스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구나, 출판사에서는 시놉 단계에서부터 마음에 안 들어하는구나. 그 생각이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는데,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시놉 단계에서 그렇게까지 피드백을 주는 것도 다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지, 나를 지적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피드백을 주지는 않을 거란 뜻이었다.


작품이 잘 되었을 때 느끼는 부담감과 차기작 성적이 좋지 않아 느낀 압박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맘이 성과에 따라 동요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그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햇수로 3년차라지만 나는 아직 작품 수가 많지 않은 작가였다.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것이다. 서로 다른 상황을 차차 겪어나가는 게 당연한데, 나는 너무 모든 게 잘 풀리는 한 가지의 경험만 하고자 했던 듯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힌 결론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다 보면 그런 간단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상담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너무 당연한 사실에 내가 너무 옭죄어 있던 것 같아서였다. 물론 선생님은 혼자서 생각하다 보면 당연히 그 생각에 갇힐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이런 도움을 받는 거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아무튼, 그날 내가 상담센터로 부리나케 달려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내가 겪는 이 과정이 당장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할 난관이 아니라, 당연히 겪게 되는 단계라고 생각하니 놀랍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연일 꿔오던 기분 나쁜 꿈도 끊겼다. 이후로도 꿈을 꾸는 날은 있었지만, 잠에서 완전히 깨고 나면 기억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다.


또, 용기가 생겼다. 조급하게 수정해서 보낸 시놉시스가 '일단 이렇게 진행해봅시다' 하는 찝찝한 반응으로 돌아왔을 때도 이전만큼 상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지극한 내 의지로 새로운 기획안을 짤 여유까지 얻을 수 있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사고 전환이 몰고오는 효과는 정말이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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