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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Jan 31. 2019

전업 주부의 방학 생활

feat. 클론 ♪난♬

아이들이 나를 깨운다. 눈 뜨자 마자 밥을 한다. 아들은 밥. 딸은 빵 나도 빵. 담백한 걸 좋아하는 딸과 나이 들어 단백질 몇 g이라도 합쳐 먹으려 하는 나를 고려해 세 가지 종류의 음식을 모두 한다. 토스터, 후라이펜, 전자레인지, 에어후라이어 까지 모두 동원해 뚝딱 만들어 낸다.


오전 운동은 꼭 가야 하므로 아이들에게 미션을 던져 주고 나간다. 땀에 쩔어 들어온다. 오늘은 특별히 아이들과 욕조에서 함께 목욕을 했다. 혼자 집에 있을 정도로 많이 컸는데 엄마와의 목욕을 좋아해주니 진짜 행복한 거 같다. 어렸을땐 내 운동을 포기하며 함께 있어줘야 했고, 좀더 자라면 혼자만 있으려고 하고 엄마와의 목욕은 끔찍한 걸로 여길테니 참 이쁜 때가 바로 요때지 싶다.


행복도 잠시. 다시 점심을 만들어야 할 시간. 학교에서의 점심 한 끼가 이렇게 큰 일인줄 새삼 느낀다. 혼자 있다면 그냥 간단히 떼우거나 건너띄는 경우가 더 많다. 밥 차리는 걸 가장 싫어하는 나는 가장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게 나니까. 차리지 않는 음식으로 먹는다. 또 빵과 커피 같은.​


그러나 고기를 먹어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아들 때문에 돈가스, 스테이크, 삼겹살, 치킨, 갈비, 베이컨 갖가지 냉동된 것들 중 하나를 꺼내 뎁힌다. 매 끼마다 같은 것은 먹지도 않아 뭘 할지가 가장 고민이다. 시간이 없을 땐 라면을 끓이고 밥과 함께 내놓고 어쩔땐 떡볶이집에 가서 오징어 튀김과 주먹밥을 떡볶이 국물에 적셔 배터지게 먹이고는 태권도에 보낸다.


가끔 생각한다. 냉동식품이 없었다면, 에어후라이어가 없었다면, 분식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50이 되어서도 돈가스나 너겟을 튀기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엄마가 쇠약해지면 김치는 사먹겠지? 비효율적인 한식 밥상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시에서 4시 사이는 나의 휴식 시간. 아침 점심으로 쌓여있는 설겆이를 무시하고 일단 침대나 쇼파로 풍덩 뛰어든다. 그런데 저녁메뉴가 또 걱정이다. 그러다 냉장고에 떨어진 재료가 생각나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마트에 간다. 내가 밥을 하는건지 밥이 나를 이끄는 건지 알 수 없다.


학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간식, 이후 퇴근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성인과 아이가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려한 밥 준비. 나물을 다듬어 무치거나 곰탕의 뼈를 씻어내어 푹 끓이거나 고기 양념을 만든다거나 마늘을 직접 까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모두 생략하고, 시댁과 친정에서 공수한 것들을 뎁히고 차릴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의 방학은 밥으로부터 시작해 밥으로 끝난다.


'밥밥디라라 따리라디리라라~~~' 클론의 '난'이란 노래가 죙일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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