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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짝 Jul 30. 2019

구석진 댓글 너머로 비치는 얼굴들.

에게 닿을까 싶어 이런 걸 보낸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 인듯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 걸까.

 -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자주 찾는 음악 큐레이션 유튜브 채널을 구경하다 ‘모의고사 망쳤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영상이 눈에 띄었다. 치킨과 구구콘을 코스로 먹던 날들을 떠올리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음색을 따라 스크롤을 주욱 내리다 툭-하고 마음이 떨어지듯 먹먹해졌다.

학생인, 학생을 지나 사회인이 된, 그 모든 걸 그만둔 이들의 하루에 대한 기록이 가득했다.


어떤 이는 생존 걱정을 하게 된 지금 모의고사를 망친 게 걱정이던 때가 그립다 했고, 또 누구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했다. 안락사 버튼이 있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누를 거라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아주 많이 눌러져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화사하고 반짝이는 하루들이 줄지어 가득한데, 왜 그곳은 내려도 내려도 벅차고 막막한 하루들로 가득할까. 행복감을 느낀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댓글을 단 이들도 인스타그램에는 오늘 사 먹은 흑당 버블티나 새로 산 에어팟키링 같은 걸 추려서 올리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힘든 날을 지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은 모를 수가 없었다.




많이 힘드시죠. 저도 그때 참 힘들었었는데. 지나고 나니 좋은 날이 오더라고요. 힘내세요.

같은 말을 건넬 수 있을 만큼 내가 좋은 날로 가득한 다른 세계로 건너와 있다면 좋으련만.


더 이상 모의고사 등급컷에 절절거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날들을 살아낸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 인듯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날들이 돌고 돈다.


모든 건 지나가는 듯 하지만 지금 힘들게 버텨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미래에 좋은 날이 오는 식은 아니다. 그건 그저 원래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것이기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라고 말할 참이냐면 천만에. 나는 그 말이 싫다.


그냥 부디 부서질 때까지 버티지는 않았으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점까지 자신을 몰고 가진 않았으면. 잔인한 보상 프레임에 자신의 시간을 모두 내어주지 않았으면. 그게 전부다. 지금이 지나고 조금은 제대로인 시간이 왔을 때 건강하게, 무사히, 잘, 살아있어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우리 구석진 인터넷 한 켠에서 종종 만나 같은 노래를 듣자.

모의고사를 망치고, 친구를 잃고, 산다는 게 버겁기만 할 때. 그럴 때 같이 재생하자. 

돌부리를 발견하면 딱 붙어 있자. 독수리가 올 때까지.

혹은 사슴지를 사보자. (Feat. 사슴지 3호)

"그럼 시는 구원할 수 있나요?
어떤 독자가 물었다.

"아뇨.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어요. 간헐적으로 돌부리 같은 게 생겨서 거기에 발을 얹은 채 매달리거나, 아니면 한 뼘 크기의 바닥이 생겨서 거기에 발을 올려 놓기도 하는데, 시가 그 돌부리나 바닥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구원이 아니고, 죽기 직전 상태가 지속되도록, 그러니까 죽지만 않도록 생명을 보전해줘요. 딱 그 정도만."

 "그럼 구원은요?"
 독자가 물었다.

"구원은 독수리가 합니다. 어디선가 독수리가 나타나서 내 목덜미를 물고 땅바닥에 놔줄 거라고 믿어봅니다. 구원이라는 게 어이없게 찾아오기도 하니까... 구원은 원래 좀 엉터리니까... 시는 구원이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끕니다. 그게 시라는 놈이 잘하는 짓 같아요. 독수리는 사랑이에요. 사람마다 사랑의 형태가 다르겠지만 독수리는 사랑이고, 나는 사랑이 좋아요. 나는 사랑을 할 거예요."

-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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