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을 때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 중 하나는 벽난로였다. 잔디, 야외 바비큐와 함께 전원주택의 3대 로망이라 부를 수 있는 벽난로는 매번 나무땔감을 준비해야 한다는 수고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난방비를 아껴주면서 시골살이의 낭만지수까지 한껏 올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주방에서는 LPG 가스통을 주문해서 쓰고, 서울에서처럼 빵빵하게 틀었다간 백만 원 단위로 폭탄을 맞을 수 있는 기름보일러는 특별한 일(예를 들면 사위 방문)이 아니면 거의 쓰지 않는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가스가 안 들어오다니, 어디 산골짝에나 해당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도시가스의 기준이 엄격하거나, 슬프지만 우리 동네도 사실은 산골짜기 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물도 계속 지하수를 쓰다가 작년부터 수도관 공사가 진행 중인데, 아빠가 가장 맘에 안 들어하시는 변화이기도 하다. 자고로 물은 비명이 나올 정도로 차가워야 하는데 수돗물은 '미지근' 해서 영 별로라고. 이제 손 시린 지하수를 쓸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다.
귀농생활은 상상만큼 그렇게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발코니로 이어지는 나무데크에서는 차 한 잔 마시며 일광욕하기 딱이지만, 고스란히 비를 다 맞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색도 다시 칠하고 코팅도 해 줘야 한다. 거미줄은 치워도 치워도 또 만들어 놓고, 봄이 오면 매 주말마다 잔디밭도 정돈해야 한다. 돌아서면 또 무성히 자라있는 마당 잡초들을 정리하다 잔디밭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의 멍한 눈빛에서, 아파트 관리아저씨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돈 나가는 일도 도시나 시골이나 비슷하다. 벽난로를 때면 금세 집 안의 공기가 훈훈해지지만 위 쪽으로만 뜨거운 공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1층 거실은 아직 싸늘한데 2층 다락방은 숨 막히게 더웠다. 공기 순환을 위해 천장에 큰 팬(후앙) 하나를 설치했다. 집안이 골고루 따뜻해지기는 했지만 건조함을 피할 순 없어서 2층에 추가로 놓을 가습기를 또 샀다. 언제는 아빠가 어디서 큰 정자 하나를 얻어왔는데, 어른 대여섯은 거뜬히 누울 수 있는 그 큰 정자를 대체 어떻게 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멋스럽고 웅장한 맛이 있었지만 뚜껑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결국 300만 원을 주고 지붕을 달았다. 여름에는 여기서 고기도 구워 먹고 누워서 음악도 듣고 한량생활 하기 참 좋은데, 굳이 한겨울에도 덜덜 떨며 정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면 지붕 값 뽕을 빼야 한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퇴근시간도 없는 고단한 시골살이지만, 땔나무가 타닥대며 타오르는 벽난로, 거기에 구워 먹는 군고구마 맛, 밤잠을 방해할 만큼 눈이 부시게 다락방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방충망에 매달려 우리 집 강아지와 눈싸움하는 조그만 참개구리가 있어 그래도 서울보다 조금 낭만적이긴 하다.